[매거진] 刮目相對(괄목상대) 눈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숨은 보석들

더스파이크 / 기사승인 : 2017-01-18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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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잘해왔던 선수가 변함없이 빼어난 기량을 펼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기량이 한결같은 선수에게는 기대치라는 것이 있는 만큼 상대 팀도 분석을 마친 상태다. 반면 눈길을 끌지 못했던, 혹은 이 정도일 것이라고 기대치를 낮춰 잡았던 선수가 기대 이상 활약을 해줄 경우 상대는 당혹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아군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시즌에 비해 기량이 급상승한 선수는 리그 판도를 흔들어놓을 중요한 변수다. 그들의 플레이를 눈 여겨 보는 것이 V-리그를 즐기는 또 다른 흥미거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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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상승세 속 은은히 빛나는 태양


화려한 활약으로 빛을 뿜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음지에서 궂은 일을 도맡으며 팀 상승세를 뒷받침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들 스스로는 태양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은은한 빛은 팀과 동료들을 더욱 밝게 빛나게 만드는 든든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남자부에서 실력이 급성장한 선수는 우리카드 윙스파이커 신으뜸(30)이 ‘으뜸’으로 꼽힌다. 지난 2009~2010시즌 2라운드 4순위로 삼성화재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니 이미 중견급 선수가 됐지만 프로에서 보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었다. 가장 활약이 뛰어났던 시즌은 지난 2014~2015시즌이었다. 당시 31경기(90세트)에 나섰던 그는 189점을 냈다. 수비형 윙스파이커 역할을 주로 했던 수비성적도 그 시절이 가장 좋았다. 736번 서브 리셉션 가운데 433개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58.8% 정확도를 보였고, 세트당 4.467개를 해결했다. 디그도 142개를 시도해 104개를 성공시켰다. 세트당 평균 득점이 2.1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수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는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올 시즌 신으뜸은 최고 시즌이었던 2년 전보다 더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시즌 전체일정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 21일 기준 이미 16경기(63세트)에 출전하며 115점을 기록했다. 2년전에 비해 출전경기 수는 아직 절반 수준이지만 출전 세트와 득점은 절반을 훌쩍 넘었다. 수비형 윙스파이커답게 리셉션 기록은 더욱 좋아졌다. 624개를 받아냈는데 이 가운데 373개가 정확해 59.8% 정확도를 기록하고 있다. 세트당 5.540개를 신으뜸이 해결해주고 있을 정도로 팀 수비에서 핵심이다. 서브 리셉션과 수비 부문에서 남자부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리베로가 아닌 수비형 윙스파이커 신으뜸이다. 기록으로만 봐도 올 시즌 우리카드 베스트6 자리를 확실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카드 구단 관계자는 “팀에 확실한 주포가 없다 보니 신뢰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지금은 신으뜸이 리셉션 또는 디그를 받아내면 최홍석이나 파다르가 해결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팀도, 본인도 안정감을 얻는 것 같다. 공격에 대한 부담은 줄고, 수비 역할에 집중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선수들 파괴력이 떨어지면서 신으뜸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으뜸이 수비에서 활약을 해주면 파다르가 해결해야 할 공의 질이 좋아진다. 상대 외국인 선수들 서브나 스파이크 위력이 약해진 만큼 신으뜸이 안정적으로 받아낼수록 우리카드가 유리한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다.



김상우 감독도 “그 동안 주로 백업이었지만 지난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고 있다. 신으뜸이 리셉션에서 잘 버텨주고 있는 점이 올 시즌 우리 팀이 달라진 점”이라고 평가하며 신으뜸 활약을 반기고 있다. 올 1월 말 김정환이 전역해 팀에 복귀하면 신으뜸과 자리가 겹치게 된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신으뜸을 1순위로 보고 있다. 김정환 경기력이 떨어질 것이 자명한 만큼 신으뜸이 막히거나 흔들릴 때 김정환이 백업 역할을 맡으며 경기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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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부에서는 흥국생명 리베로 한지현(23)에 대한 평가가 좋다. 프로에 입단한 것이 지난 2012~2013시즌이었으니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지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기록상 가장 좋은 활약을 했던 때는 프로 2년차였던 2013~2014시즌. 당시 29경기(110세트)에 나섰다. 하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고, 주예나와 김혜선 등에 밀려 주전 자리가 아닌 백업을 전전해야 했다. 일신여상 시절까지만 해도 세터로 뛰었던 그는 프로에 오면서 169cm 작은 키가 걸림돌이 되면서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꿨다. 프로생활을 시작했던 때,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해 뒤늦게 수련선수로 흥국생명에 입단했던 아픔도 있었다.



온갖 아픔 속에서도 견디고 버텨온 힘이 올 시즌 상전벽해의 위상변화로 이어졌다.



구단 관계자는 “출전경기 수가 적었고, 교체로 조금씩 출전하면서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김혜선 부상으로 기회를 얻더니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워낙 성실하게 열심히 운동했던 선수라 주변에서는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고,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수련선수로 시작해 부상도 겪는 등 어려움이 있었는데 결국 기회를 잡아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 한지현은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프로진출 후 첫 경기 최우수 선수로도 선정되는 등 최고 시즌을 보내고 있다. 흥국생명이 이재영과 러브 좌우 쌍포를 앞세워 리그 수위를 달리고 있는 데는 한지현이 묵묵히 궂은 일을 해준 덕이 적지 않다. 박미희 감독이 리그 최고 리베로인 김해란(KGC인삼공사)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다는 찬사로 기를 북돋울 정도로 흥국생명에서는 보석 같은 존재다.



한지현은 ‘수련선수 신화’로 평가 받을 만큼 최근 이목을 끌고 있다. 온갖 상실감으로 인해 꿈은 접고 희망은 포기하는 최근 우리사회 분위기 속에서 열정과 성실함으로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은 스포츠가 전하는 감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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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팀 성적 속에서 믿고 기댈 곳은 바로 너


팀 성적이 조금만 더 나았더라면 활약상이 크게 주목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소속팀 성적이 부진하면서 다소 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물론 예년에 비해 좋은 활약을 하면서 실력을 재평가 받고 있기 때문에 팀 성적을 반등세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팬들의 찬사를 독차지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아기 용병’으로 불리는 GS칼텍스 윙스파이커 이소영은 지난해 11월 19일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생애 첫 기록이었을 뿐 아니라 국내 선수로는 지난 시즌 국가대표 공격수 김희진(IBK기업은행)에 이어 약 1년만에 나온 반가운 기록이었다.



사실 이소영은 지난 2012~2013시즌 1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해 당해 시즌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선수였다. 프로입단 첫 시즌과 지난 시즌 올스타전에서는 스파이크서브 퀸에 등극하기도 했을 만큼 인정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서브 리셉션 불안함과 그에 따른 공격력 기복이 겹치면서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 못했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지난해가 가장 좋았다. 30경기(106세트)에 출전한 그는 349점을 기록, 경기당 평균 11.6점을 냈다. 반면 올 시즌 14경기(52세트)에 출전한 가운데 199점, 경기당 평균 14.2점을 내며 성장세를 확인시키고 있다. 수비에서 역할도 늘었다. 지난 시즌 세트당 3.0개, 3.179개 리셉션을 받아냈는데 올 시즌에는 3.096개 리셉션과 3.481개 디그를 해결해주고 있다. 정확도는 지난 시즌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이는 역할 비중이 커진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시즌보다 수비 역할을 더 많이 해내면서 득점도 늘어난 것은 그만큼 ‘받고 때리는’ 윙스파이커로서 기량이 성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GS칼텍스 구단 관계자는 “아직은 경기에 따른 기복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 서브 리셉션이나 공격 모두 기량이 많이 안정된 것이 사실이라 기대를 하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공격 강약조절이 좋아졌다고 평가한다. 팀 분위기가 안정되면 더 좋아질 것”이라면서 “공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줘야 할 선수로 이소영이 잘해야 승리할 수 있다. 이제는 언니들 뒤를 받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끌어가야 할 선수”라고 말했다.



이소영이 보다 책임감을 갖게 된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그 동안 윙스파이커로 호흡을 맞췄던 한송이가 미들블로커로 전향하면서 이소영 스스로 득점 책임을 더 져야 하는 상황이 된 점이다. 또 하나는 2016 리우올림픽 본선 출전이 좌절된 데 따른 오기가 발동한 점이다.



구단 관계자는 “아시아예선 당시에는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마지막 본선행 최종 엔트리에서는 제외됐다. 본인 스스로 실망감이 컸던 것으로 안다. 아쉬움을 털어내겠다는 각오로 올 시즌을 독하게 준비했다. 올림픽 출전 좌절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하위권이지만 GS칼텍스 구단은 이소영이 외국인 공격수 알렉사와 더불어 팀 성적 반등을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팀을 떠났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소영을 택하며 꾸준히 믿음을 보인 이선구 감독을 위해서도 이소영은 더 화려하게 날아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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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부에서는 OK저축은행 전병선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OK저축은행은 새로운 외국인 선수 모하메드가 가세하고 송명근이 부상에서 회복해 코트로 돌아왔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전병선 위치는 다시 일명 ‘닭장’으로 불리는 웜업존이 됐지만 올 시즌 초반 그가 보여준 모습은 괄목할만했다. 송명근과 강영준 등 국내 공격수 부상에 더해 세페다의 범죄와 마르코의 부상 등으로 외국인 선수들까지 속을 썩인 OK저축은행은 디펜딩 챔피언 면모에 어울리지 않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포짓 스파이커 전병선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은 소득이었다. 지난 2014~2015시즌 2라운드 6순위로 OK저축은행에 입단한 그는 사실 주목 받거나 중용되는 선수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 37경기(80세트)에 나서 25득점에 그쳤을 만큼 백업요원으로 굳어져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지난해 11월 18일 우리카드와 경기에서는 개인 통산 한 경기 최다인 24점을 내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31%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성공률은 56%가 넘는 외국인 선수급 활약이었다. 지난 시즌 총 득점이 25점이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올 시즌 활약은 높게 평가해볼 이유가 충분하다.



현재는 모하메드 가세와 송명근 복귀로 인해 다시 백업이 됐다. 교체로만 코트를 밟으며 주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OK저축은행은 부진을 거듭하는 와중에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전병선이라는 카드를 하나 얻었다. 새 외국인 선수 모하메드가 지난 시즌 시몬 만큼 활약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부상에서 돌아온 국내선수들이 팀이 챔피언에 오르던 때처럼 펄펄 날아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 또한 예상 가능한 일이다. 준비가 잘 돼있는 전병선이 중용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다.



글/ 이정수 스포츠서울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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