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의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져간다. 그래서 염혜선은 그 기억을 다시 살려보려 한다.
우승은커녕 챔피언결정전 경험이 있는 선수도 많지 않은 정관장에서, 우승을 맛본 적이 있는 염혜선의 존재감은 단연 크다. 그는 현대건설에서 뛰던 시절 2010-11시즌과 2015-16시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흔히 말하는 ‘고기를 먹어본 사람’인 것이다. 다만 두 번째 우승도 벌써 9년이 지났다. 이제는 조금씩 그 기억이 흐릿해져간다.
그래서 염혜선은 그 기억을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관장이 13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염혜선은 챔프전에서도 좋지 않은 무릎 상태에도 불구하고 분투하며 세 번째 우승 반지를 사냥하고 있다.
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치러진 정관장과 흥국생명의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에서도 염혜선은 맹활약을 펼쳤다. 깔끔한 경기 운영에 효과적인 서브 공략까지 선보이며 팀의 3-2(25-20, 24-26, 36-34, 22-25, 15-12)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염혜선은 “우리 홈에서는 상대 축포를 터트리지 못하게 하자는 이야기를 선수들과 나눴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경기였으니까 후회 없는 경기를 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대전에서 상대가 축포를 터뜨리지 못하게 해서 기분이 좋다. 이제 동등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며 승리 소감을 밝혔다.
이후 염혜선과 경기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경기 초반 적극적으로 중앙을 활용한 부분에 대해 염혜선은 “영상을 보는데, 상대 블로커들이 미리 날개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 메가와티 퍼티위(등록명 메가)와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를 원 블록으로 막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리시브가 잘 왔을 때는 중앙 쪽에서 확실하게 활로를 뚫어보려고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성공적이었던 서브 공략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특히 5세트에 터진 결정적인 서브 득점에 대해 염혜선은 “4세트 때 정윤주 쪽으로 목적타를 너무 확실히 때리려고 하다가 범실이 나왔다. 그래서 5세트에는 신연경과 정윤주가 붙어 있는 사이 공간을 노리거나, 아예 짧은 서브를 넣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그게 통한 것 같다”고 비결을 전했다.
이후 지난 두 번의 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염혜선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빨리 기억을 끄집어내서 그 맛을 다시 느껴보겠다. 지금 멤버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모두가 간절하다”며 그때의 기억을 되살릴 것임을 강조했다.
염혜선은 이번 시리즈 내내 ‘악역’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해왔다.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가 우승으로 끝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정관장과 염혜선은 악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혜선은 이제 악역이 주인공이 되는 세계관을 꿈꾼다. 그는 “어쩌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였을지도 모르겠다(웃음).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악역에서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를 만들어보겠다”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염혜선은 “어제(5일) 병원에 가서 무릎에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그래서 좀 덜 아팠다”며 씩씩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제 그 처절한 투지로 버텨야 할 경기도 단 한 경기만이 남았다. 과연 염혜선은 이 드라마의 결말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집필할 수 있을까.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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