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좋지 않던 김미연은 경기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제 컨디션을 찾았고, 옐레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펼쳤다. 그야말로 뭘 해도 되는 날이었다.
김미연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등록명 옐레나)는 김연경과 함께 흥국생명의 날개를 책임지는 핵심 자원들이다. 김미연은 리시브와 서브에서, 옐레나는 공격과 사이드 블로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선수가 동시에 맹활약하는 날에는 흥국생명이 경기를 쉽게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31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펼쳐진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도 그런 경기였다. 김미연은 1세트가 시작되자마자 서브 득점 2개 포함 7연속 서브를 퍼부으며 경기의 균형을 일찌감치 무너뜨렸다. 이날 흥국생명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면이었다. 그런가하면 옐레나는 단 하나의 범실도 기록하지 않고 경기 최다인 21점을 터뜨리며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각자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한 두 선수였다.
경기 종료 후 김미연이 먼저 인터뷰실을 찾았다. “아직까지는 우승이 가까워져 온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밝힌 김미연은 “1차전 때 45개의 리시브를 받았다. 우스갯소리로 (김)해란 언니와 (김)연경 언니한테 그냥 나만 서 있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나한테만 때린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웃음). 한 번에 다시 기회를 주지만 말자는 마음으로 리시브에 임했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이날 3개의 서브 득점을 터뜨린 김미연은 “오전 운동할 때까지만 해도 서브 감이 좋지 않아서 걱정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김미연은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다. 그는 “그러나 경기에서는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릴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흥국생명의 주장이기도 한 김미연에게 주장으로서 특별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지 묻자, 김미연은 “나보다는 해란 언니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쉬운 공격에 점수를 주지 말자, 상대가 언제든 추격할 힘이 있는 팀이니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는 거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조금 보태는 편이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옐레나에게 이날 단 하나의 범실도 기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고 묻자, 옐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몰랐다(웃음). 알려줘서 고맙다(웃음). 듣고 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그게 다다. 왜냐면 진짜 몰랐었기 때문이다(웃음). 항상 범실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실제로 하나도 안 하니까 정말 행복하다”고 해맑게 답했다.
인터뷰에 임하는 옐레나의 핑크색 네일아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에 대해 묻자 옐레나는 “이번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맨 처음 한 네일아트가 핑크색이었다. 그래서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다시 핑크색 네일아트를 받았다”고 밝혔다.
옐레나는 최근 발표된 여자부 트라이아웃 신청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 남고 싶은 마음이 큰지 묻는 질문에 옐레나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우리 팀이 가족처럼 느껴진다. 잘 적응할 수 있게 많은 것들을 도와줬다. 한국에서 더 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팀이다. 그래서 트라이아웃에 신청했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흥국생명의 우승까지는 단 1승만이 남았다. 과연 옐레나와 김미연은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 그들의 바람대로 김천에서 통합우승을 달성할 수 있을까. 4월 2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그들이 보여줄 활약이 기대된다.
사진_인천/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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