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필요한 존재였기에' 황동일이 말하는 ‘저니맨’의 삶과 커리어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1-02-23 21: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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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많은 이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한국을 빛낼 장신 세터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은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데뷔 후 프로에서만 여섯 팀을 길고 짧게 거친 저니맨이 됐다. V-리그 일곱 팀 중 여섯 팀에 몸담았다. 이보다 우여곡절이 많은 커리어가 있을까. 2020-2021시즌 한국전력 상승세 주역 중 한 명인 황동일 이야기다. 그 커리어를 들어보자면 몇 날 며칠을 투자해도 모자랄 것이다.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는 황동일의 말에는 솔직함과 후회, 기쁨 그리고 스타가 아닌 프로선수가 느끼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인터뷰는 1월 11일 진행됐습니다).



여섯 번째 소속팀, 그리고 내 친구 영석이

“영석아, 우리 행복배구 하자”

 

지난 11월 13일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 대형 트레이드 소식과 함께 황동일은 프로 여섯 번째 소속팀을 맞이했다. 황동일은 이적 후 두 번째 경기였던 2020년 11월 18일 KB손해보험전 2세트부터 선발로 나섰고 이후 대부분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고 있다. 

 

트레이드 이후 한국전력 상승세는 굉장하다. 7연패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2월 24일 기준 15승 15패를 기록 중이다. 트레이드 후 15승 8패니 지금까지 트레이드는 대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전력이 가진 중앙 약점을 단숨에 메운 신영석이 상승세 일등공신으로 뽑히겠지만 주전 세터로 투입돼 패스뿐만 아니라 서브, 블로킹까지 다방면으로 팀에 기여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황동일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상승세 중심에 주전 세터 황동일도 있다는 말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황동일은 “제가 와서 상승세인 건 아닌 것 같다”라며 “기존에도 출중한 선수들이 많았다. 다만 하나둘 삐거덕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영석이랑 광국이랑 저랑 합류하고 10승 3패다(인터뷰 시점 기준). 그나마 우리가 보탬이 된다는 게 다행이고 기분 좋다”라고 트레이드 후 지금까지 간략한 소감을 말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황동일은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자신이 주전으로 올라서면서 팀도 상승세를 탔다. 2017-2018시즌, 다시 본업인 세터로 돌아와 삼성화재 11연승을 이끈 바 있다. 2019-2020시즌에는 현대캐피탈 소속으로 1월 18일 대한항공전에 선발로 나섰고 이후 4연승 주역으로 활약했다. 앞선 두 번의 기억과 이번 한국전력 상승세는 어떻게 달랐을까. 당시를 돌아본 황동일은 그 안에서 자신이 느낀 후회와 아쉬움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삼성화재 시절 11연승을 했을 때는, 그때가 아쉬운 게 많아요. 당시 멤버가 정말 괜찮았고 선수들끼리 ‘이번에 우리 성적낼 수 있겠다, 한번 해보자’ 이런 분위기였거든요. 그때 우리가 2연패 후 11연승을 했어요. 그 멤버로 계속 갔으면 어땠을지에 대한 생각도 있어요.”

 

“현대캐피탈에서는 2019-2020시즌 도중에 승원이가 조금 부진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들어가서 4연승을 했죠. 그때는 제 욕심이 많았어요. 당시 최태웅 감독님께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때 온 기회를 잡으려고 개인적인 욕심을 많이 냈죠. 당시에 연승이 끊기는 경기에서 저 때문에 밸런스가 많이 무너졌어요. 무리한 플레이도 많이 했고요. 그것도 너무 아쉬워요.”

 

“그렇게 두 번을 겪고 한국전력에서 5연승, 3연승을 했죠.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첫 번째로 제 개인적인 욕심이 없어요. 앞선 두 차례 연승 당시에는 제 개인적인 욕심이 컸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현대캐피탈에 계속 있었다면, 올 시즌이 끝나고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트레이드되면서 저한테 기회가 주어진 건데, 과거에는 개인적인 목표와 욕심이 먼저였다면 지금은 이 팀을 끌어올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과거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게 저에게도 플러스가 되는 것 같아요.”

 

이미 황동일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적이지만 한국전력 생활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그래도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까지, 황동일은 많은 생각 속에 프로 생활 여섯 번째 팀을 맞이했다.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대한항공으로 갔을 때는, 주전 세터로 뛰다가 (한)선수 형 보좌 역할을 해야 했잖아요. 솔직히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어쨌든 경기에 나오다가 못 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을 계속 겪으면서 자존감이 떨어진 건 사실이에요. 트레이드 소식을 들으면 ‘또 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 위안을 삼기도 해요. ‘그래도 저 팀이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라면서요. 선수는 1년, 1년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특히 저는 나이도 있으니까요. 한국전력으로 트레이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마지막 기회구나’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이제 한국전력에서 영석이도 그렇고 철우 형 등 이런 선수들하고 그래도 한번 해보고 웃으며 은퇴하면 얼마나 좋을지에 관한 생각도 많이 했죠.”

 

황동일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다시 주전 세터 역할을 맡았을 때, 황동일은 그때도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꺼냈다. 더불어 당시 황동일은 “9년 만에 배구가 재밌다”라는 이야기도 꺼냈다. 황동일이 말한 두 번의 마지막 기회는 같은 말이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삼성화재 시절에 재밌다는 표현을 한 건, 제가 삼성화재에서 아포짓으로도 뛰어보고 미들블로커로도 뛰어봤죠. 정작 제 포지션을 찾을 수 없었어요. 삼성화재에 보탬이 된 건 좋았지만 저는 세터인데 그 임무를 못하고 있는 거잖아요. 물론 그건 제 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러다가 다시 세터로 나설 기회가 주어졌고 11연승을 달리면서 배구가 재밌어진 건 사실이죠.”

 

“지금은 그때 느낀 즐거움과는 또 달라요. 뭐라고 할까, 행복하다?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지만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현대캐피탈로 이적했을 땐 영석이랑 성민이랑 같이 은퇴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고 프로에서 한 팀으로 다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여한이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한국전력으로 올 때는 또 영석이와 함께 왔죠. 예전에 영석이가 많이 그리웠어요. 제가 속공 플레이에 미흡한 부분이 컸는데 영석이를 만나서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그게 맞아떨어졌어요. 한국전력에서 영석이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저도 그걸 토대로 다른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있고요. 자신감도 많이 붙었죠. 지금까지 배구를 거의 20년 정도 했는데, 그런 점들 때문인지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황동일 스스로도 언급했지만, 한국전력에서 그가 더 행복하게 그리고 또 잘 적응하며 보낼 수 있는 데는 함께 이적한 절친, 신영석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신영석 역시 “아마 혼자 갔다면 더 외로웠을 것이다. 워낙 서로 잘 안다. 빠르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라며 친구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캐피탈에 이어 다시 한번 한 팀에서 의기투합한 두 선수는 새로운 목표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석이가 같이 와서 더 좋은 건 100% 맞는 이야기고요. 영석이랑 같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고마웠고 의지가 많이 됐어요. 저는 트레이드도 많이 되어봤고 많은 팀을 겪었잖아요. 근데 영석이는 물론 우리캐피탈(드림식스)에서 현대캐피탈로 옮겨본 적은 있지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팀의 간판이자 에이스를 트레이드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제가 영석이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영석아, 솔직히 너한테는 이게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네가 한 번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그 틀을 깨봤으면 좋겠다’라고요. 우리가 한국전력이라는 팀을 다시 한번 일으켜보자는 말도 했고, 서로 의지가 되는 말을 많이 했죠.”

 

현대캐피탈에서 다시 뭉쳤던 경기대 3인방(여기서는 문성민과 신영석, 황동일을 의미한다)은 함께 우승하자는 목표와 함께 같이 은퇴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신영석과 황동일이 한국전력으로 이적하면서 그 꿈은 다시 미뤄졌다. 당시 같은 꿈을 꾸던 때를 돌아보며 황동일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가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던 해에(2019년) 현대캐피탈이 우승했잖아요. 영석이랑 성민이가 우승하고 현대캐피탈 팬들과 손을 잡고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어요. 그 사진을 저도 봤는데 그때 영석이였나, 성민이가 ‘저기에 너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 기분 진짜 좋았는데. 너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다’라고요. 지금은 또 제가 영석이한테 그런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우리가 지금 성적이 어떻다고 이야기하면 욕심이다. 지금 우리가 코트에서 같이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냐, 어떻게 하면 상위권으로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건 욕심이다’라고요. 물론 시즌 후반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코트 위에서 다른 선수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뛰어다닌다면, 조심스럽게 봄 배구는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뒤늦게 시작한 세터, 그리고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에 갔던 게 천만다행이죠”

 

황동일은 배구 인생 시작부터 세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세터로 포지션을 바꿨다. 포지션 변화는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세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기에는 새삼 현실적인 이유가 숨어있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공격수를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부터 세터를 했어요. 제 위로, 바로 1년 위에 박철우라는 선배가 있었죠. 당시 제 꿈도 국가대표 최고의 아포짓이 되는 거였는데, 단순 재능만 가지고 될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죠. 철우 형은 그때 이미 키가 거의 2미터였어요. 철우 형한테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머릿속에 ‘빡’ 왔어요. 그래서 당시 중, 고등학교 코치, 감독님께서 세터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세터를 하게 됐고 조금씩 재미를 붙였죠.”

 

“당시에 경기대를 선택한 것도 세터 출신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당시 이경석 감독님이 명세터 출신이니 그런 분에게 배워봐야 세터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했어요. 당시 저는 세터의 기본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요. 세터는 세터한테 배워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세터로 내디딘 프로 첫 발자취는 나쁘지 않았다. 2008-2009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우리캐피탈 드림식스에 지명됐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LIG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주전 세터로 나선 황동일은 2008-2009시즌 신인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황동일은 2009-2010시즌에도 주전 세터로 뛰었지만 팀은 다시 한번 4위에 머물렀고 봄 배구에 실패했다. 2010-2011시즌에는 새 사령탑인 김상우 감독이 방지섭을 영입하면서 입지가 줄었고 그 시즌이 황동일과 LIG손해보험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황동일은 2011-2012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황동일은 한선수 백업 세터로 밀렸고 세터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솔직히 신인상도 우리캐피탈로 갔던 제 동기들, 영석이 같은 친구들이 못 뛰어서 받았다고 봐야죠. 당시 신인 중에 경기에 어느 정도 나온 게 저랑 (최)석기뿐이었거든요. 출전 경기 수가 많아서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제 동기들이 다 뛰었다면 분명 신인왕은 영석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신인왕 이후 추락했죠.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는 것도 컸고, 또 한편으로는 신인상을 받으면서 좀 나태해진 부분도 있었고요. 그걸 잡는데 어떻게 보면 10년 걸린 거죠. 한번 바닥을 치니까 올라오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이제 조금 경기력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력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게 의미가 남다르기도 하죠.”

 

세터로 확실한 길을 가지 못하고 방황했다. 포지션도 바뀌었다. 미들블로커를 보기도, 다시 아포짓으로 뛰기도 했다. “프로에서 포지션을 다시 바꾼다고 하면 이미 늦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도 많다. 이미 잘하는 사람만 모아둔 곳이 프로인데 거기서 공격수로 보직을 바꾼다? 쉽지 않다”라고 포지션을 바꿔서 뛴 과거를 떠올리기도 한 황동일이다. 

 

그렇게 세터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던 황동일에게 현대캐피탈 이적은 꽤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2018-2019시즌 종료 후 삼성화재에서 방출된 황동일은 현대캐피탈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고 최태웅 감독을 만났다. 명세터 출신이자 세터 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최태웅 감독이었기에 황동일은 현대캐피탈에서 반전을 만들고자 했다. 

 

“세계적인 세터 흐름에 맞게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발전이 없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았죠. 사실 삼성화재에서 방출됐을 때 다른 팀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하지만 그때 최태웅 감독님께 배워보자는 생각이 컸어요. 세터로서 마지막을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이었죠. 1년 반 동안 최태웅 감독님 밑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저와 비슷한 색깔을 가진 세터들을 보여주면서 이 선수와 스타일이 비슷하니 이런 걸 배워보면 어떤지, 특성은 어떤지를 알려주셨죠. 그리고 세터는 상대 센터 블로킹과 싸우는 거잖아요. 그걸 많이 배웠어요. 상대 센터 블로킹과 수 싸움을 하면서 공격수들에게 블로커 한 명, 한 명 반 정도로 빼주거나 찰나의 순간 타이밍을 뺏는 걸 많이 배웠죠. 그걸 한국전력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대캐피탈에서 배운 게 지금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어요. 100%, 120%? 경기 중에 써먹는 것 중 최태웅 감독님한테 배운 게 많아요. 그런 생각도 했어요. 배구의 길에 들어오면서 언젠가 저도 지도자를 할 기회가 올 수 있잖아요. 똑같은 세터 코치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뭔가 후배들에게 뭘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닌 정말 세계적인 배구 흐름을 가르쳐 주고 싶은데, 최태웅 감독님께 배우면서 ‘아, 이건 내가 나중에 지도자가 됐을 때 활용할 수 있겠구나’라는 게 많았어요. 대단하신 분이죠.”

 

과거를 돌아보며 뭔가 후회가 남는 부분은 없었을까. 황동일은 세터로서 혹은 배구선수로서 갖춘 재료는 충분했다. 세터로 본다면 흔치 않은 장신에 긴 윙스팬, 운동능력도 준수했다. 하지만 기대하는 만큼 꽃피우진 못했다. 황동일은 뭔가 시대가 자신과는 조금 맞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물론, 동시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자리 잡지 못한 건 실력이 우선이라는 전제를 깔면서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시대를 좀 잘못 탄 것 같아요. 제 대학 시절, 프로 초창기에는 세터는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게 컸어요. 세터는 흥분하면 안 되고 공격성이 강하면 안 되고, 그게 우리나라 문화였어요. 시대가 조금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물론, 실력도 부족했지만 제 성향과 시대도 조금 안 맞았다고 생각해요.”

 

 

V-리그 대표 저니맨

그래도, 누군가 나를 필요로 했음에

 

황동일은 V-리그를 대표하는 ‘저니맨’이다. 신인드래프트 지명 직후 며칠 지나지 않아(사실상 이미 예정됐던) 떠난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을 포함하면 현재 V-리그 남자부 7개 팀 중 여섯 팀을 거쳤다. OK금융그룹을 제외한 모든 팀 유니폼을 입어봤다. 앞으로도 이 정도로 많은 팀을 거치는 선수는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후배 노재욱이 무서운 기세(?)로 따라잡고 있긴 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팀을 계속해서 바꾸면서도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어느 팀이 원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저니맨 경력을 돌아본 황동일도 그런 점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황동일에게 저니맨은……그래도 필요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만한 희소성이 없고 선수로서 가치가 없었다면 여섯 팀을 돌 수도 없었겠죠. 그래도 뭔가 하나 장점이 있고 임팩트가 있으니까 저를 떠올리고 생각하면서 기회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이적을 겪었고, “프로라면 언제든 이적할 수 있다”라고 말한 황동일이었지만 그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 2019년 삼성화재에서 나왔을 때가 그랬다. 당시 황동일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들 서율이가 이제 여섯 살이다. 예전에는 6시 출근이니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모습을 못 봤다. 요즘에는 서율이가 나갈 때마다 집에 있으니 ‘아빠 왜 배구하러 안 가?’하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라고 말했다. 다시 소속팀을 찾기까지 그 시간은 그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이전 이적은 모두 트레이드였지만 이번에는 팀에서 나와 어느 팀으로 간다는 기약이 없었기에 더 힘들었다. 그래서 더 절실했던 당시 황동일이었다. 

 

“제가 ‘마지막 기회’라는 표현을 두 번 썼잖아요. 2017년에는 더 추락하지 말자는 의미였어요. 나태해지지 말자는 거였죠. 기회가 왔을 때 까불지 말자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러고 삼성화재에서 방출됐을 때, 이대로 은퇴한다고 하면.......당시 서율이가 이제 막 아빠가 배구선수라는 걸 알 때였어요. 아들 앞에서 그냥 무너지기 싫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아직은 물러날 때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최태웅 감독님에게도 더 어필했고,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말을 한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거쳐 이제는 한국전력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팀을 거친 그는 이제 다양한 경험과 문화를 거친 베테랑이 됐다. 그 사이 스스로 이야기한 것처럼 욕심을 많이 내려놓기도 했다. 어느덧 프로 12년차, 그가 저니맨으로 보낸 지난 시간을 통해 느낀 바는 무엇이었을까. 

 

“예를 들어 경기를 치를 때, 여러 상황이 있잖아요. 우리가 궁지에 몰렸을 때, 좀만 더 밀리면 떨어질 때, 그럴 때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했고 경험을 얻은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은 경기 때면 항상 오거든요. 과거 경험을 발판 삼아서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베테랑이라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낯간지럽다고 할까요. 저처럼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대부분 많은 경기를 뛰었거나, 혹은 프랜차이즈 스타이거나, 아니면 주전으로 뛴 경험이 많죠. 저는 프로에서 12년을 뛰었지만 주전으로 뛴 건 몇 년 안 돼요. 숱하게 백업을 오갔죠. 그때 느낀 심경을 좀 더 이해하고 지금 한국전력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황동일은 이번 한국전력이 마지막 팀이 되길 바란다. 지난 2020년 11월 26일 OK금융그룹전 이후 인터뷰에서 “난 한국전력에 뼈를 묻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동일에게 이 멘트를 언급하며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가볍기보다는, 생각보다 무겁고 또 프로 세계의 냉정함을 담고 있었다.

 

“미래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제가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잖아요? 전 내일이 없어요. 전 철우 형, 선수 형이나 영석이와 같은 급이 아니에요. 전 당장 오늘만 생각해요. 오늘 베스트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전 내일이 없어요. 그리고 코치님들 사이에도 저에 대한 선입견이 분명 있을 거예요. 제가 여섯 팀을 옮겨 다니면서 들은 저에 관한 소문들도 많을 것이고 제 단점도 수십 가지 뽑을 수 있겠죠. ‘쟤는 저래서 안 돼, 이래서 안 돼’ 이런 소문들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하고 그런 소문을 깨야 해요. 감독님, 코치님들에게 ‘그래도 동일이가 지금까지 버티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하는 거죠. 내년도 없고 당장 올 시즌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만큼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감독님과 코치님께 신뢰를 쌓아야 다시 계약을 맺을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오늘만 보고 있고, 내일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지금의 황동일이 이제 막 처음 팀을 옮긴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 있을까. 이에 관한 답변 역시 솔직했다. 황동일은 “돌이켜 봤을 때 제가 과거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경솔했다? 너무 나댔다? 그 정도인 것 같다”라고 답한 그는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살아남지 못한 건 결국 제가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레이드된 거다. 너무 못했다, 인생이 쓴데 너무 달콤함만 생각했다, 그런 말밖에 해줄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냉혹한 표현을 스스로에게 남겼다. 

 

 

가족은 나의 힘!

“이제는 아들이 훈수도 둬요”


모든 선수에게 그렇지만 가족은 힘든 프로 생활을 견디는 데 정말 큰 힘이 된다. 황동일도 마찬가지였다. 삼성화재에서 현대캐피탈로 이적할 당시, 팀을 나왔을 때 더 큰 동기부여를 안겨준 것도 가족이었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준 사람도 가족이었다. 현대캐피탈로 이적 후 두 경기 연속으로 선발로 나섰을 당시 메신저 프로필 메시지로 ‘아들, 아빠 꼭 해낼게’라고 적어두기도 했던 황동일이다(2020년 1월 21일 한국전력과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당시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지금도 아들 덕분에 많은 힘을 얻는다는 황동일. 이제는 둘째 딸 서이에게 아빠가 배구선수라는 걸 알려줄 때까지 코트를 지키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대한항공 유광우도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식을 가진 부모 선수의 마음은 다 비슷한 듯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큰 아들 서율 군은 훈수까지 둔다고.

 

“제가 삼성화재에서 나왔을 때, 아들이 ‘아빠, 왜 배구하러 안 가’라고 했어요.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말이죠. 그때는 정말 가슴을 뭔가 날카로운 비수가 찌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다시 코트에 서면서 아들에게 아빠가 배구선수라는 건 확실히 인식시켜준 것 같아요. 이제는 딸한테 보여줘야죠. 이제 네 살이에요. 앞으로 제가 몇 년 더 선수 생활을 할지는 모르지만 딸에게도 아빠가 그렇게 유명한 선수는 아니더라도 배구선수였다는 것 정도는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들은 이젠 훈수를 둬요. ‘아빠, 서브 그렇게 세게 때리면 안 되지!’, ‘오늘 패스 왜 이렇게 못했어? 거기로 올라갈 게 아닌데’, ‘아빠, 강서브 때려!’ 이런 식이죠. 서율이는 배구 규칙도 어느 정도 아니까요. 서율이가 그렇게 말할 때면 재밌어요. 그러면서 그래도 서율이에게는 배구선수로서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줬구나 싶죠.”

 

아들도 많은 힘이 됐지만 역시 아내를 향한 고마움도 빼놓을 수 없었다. 황동일은 두 아이에 이어 아내에게도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와이프가 저 만나고 고생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제가 정말 바닥 쳤을 때 만났어요. 예전에 제가 한번은 술을 정말 많이 먹고 와이프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 적이 있어요. 어쨌든 제 친구는 신영석, 문성민, 그 외에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명한 배구선수들이죠. 아내도 주변 사람들한테 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을 텐데, 저는 그 정도 급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 자랑도 하고 싶을 수 있잖아요. 아내가 그런 거에 대해 표현은 아니지만 저는 좀 느끼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많이 미안했죠. 그래서 아내에게 더 유명해지긴 어렵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해보겠다고 했어요.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할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배구해볼 테니까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고, 또 옆에서 같이 이겨내 줘서 위로가 많이 됐어요. 아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와이프에게 정말 너무 고맙죠.” 

 


“초심 잃지 말고 오늘만 보고 달리자!”

 

황동일은 올해로 35살, 프로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다. 현역 연장 의지는 강하지만 그와 별개로 선수 생활 이후를 조금씩 고려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터뷰 막바지, 그의 올 시즌과 미래 목표를 물었다. 먼저 이야기한 올 시즌 목표는 ‘행복배구’였다.

 

“올 시즌 목표는 지금처럼 선수들과 패배의식을 떨쳐버리고 강인한 정신으로 코트에서 즐겁고 행복한 배구를 하는 게 목표에요. 그렇게 하다 보면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한국전력이 그래도 봄 배구는 한번 노려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선수 생활 이후 황동일이 그리는 그림은 무엇일까. 황동일은 지도자에 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는 “만약 현대캐피탈에 가지 않았다면 지도자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대캐피탈에서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현대캐피탈 시스템에서 보고 배운 게 많다. 그걸 토대로 더 공부한다면 세터 코치에 도전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늘고 길게 간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황동일은 자신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항상 초심 잃지 말고 내일은 없는 것처럼, 네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훈련해라. 그럼 좋은 답이 너에게 찾아올 거다. 그래야 내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생각 말고 오늘만 보고 뛰어라.”

 

마지막까지도 절실함을 강조한 황동일. 한국전력에서 그의 배구 커리어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가늘고 길게 가면서 이전보다 빛날 그의 여섯 번째 장을 기대해 본다. 

 

황동일 프로필

생년월일 1986. 04. 14

신장/체중  192cm/90kg

포지션 세터

출신교 본오중-평촌고-경기대

프로입단 2008-2009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우리캐피탈)

주요경력 

2008 우리캐피탈

2008~2011 LIG손해보험

2008-2009시즌 V-리그 신인왕

2011~2014 대한항공

2014~2019 삼성화재

2019~2020 현대캐피탈

2020~ 한국전력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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