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시작이다’ 쿨한 매력의 소유자, 한국도로공사 켈시

강예진 기자 / 기사승인 : 2021-02-11 20: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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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 V-리그는 5라운드가 한창이다. 여전히 순위 경쟁은 치열하다. 여자부는 3위 쟁탈전에 관심이 쏠린다. 시즌 초반 부진했던 도로공사는 반등에 성공해 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심엔 외국인 선수 켈시 페인(26)이 자리한다. 켈시가 한국리그에 적응하자 팀도 변화의 동력을 찾았다. 무엇이 켈시를 움직였을까. 궁금해진 <더스파이크>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김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
켈시의 성장에 시즌 초반 추락했던 한국도로공사는 반등하고 있다. 켈시는 1월 13일 흥국생명전에서 자신의 한 경기 최다득점인 49점(공격 성공률 47%)을 폭발시키며 ‘인생경기’를 펼쳤다. 올 시즌 여자부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이기도 하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켈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줬다.

사실 출발이 좋진 않았다. 세터와 손발이 잘 맞지 않았던 탓이 크다. 세터 이효희가 코치로 자리를 옮긴 뒤 GS칼텍스와 트레이드를 통해 세터 이고은이 왔다. 코트 위 지휘자가 바뀌었다. 기존 선수들과 호흡을 가다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한국도로공사다. 박정아와 함께 쌍포를 이룰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선수 선발 당시 더욱 신중을 기했다. 켈시는 2020-2021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김종민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김종민 감독은 2순위로 유력했던 헬레네 루소(현대건설)를 외면했다. 대신 켈시의 ‘높이’에 주목했다. 켈시는 191cm의 준수한 신장에 점프력과 타점이 좋다. 김종민 감독은 “점프가 상당히 좋다. 블로킹 위에서 때릴 수 있는 타점을 가지고 있다”라면서 “우리 팀에는 박정아의 반대쪽에서 한방을 때려 줄 선수가 필요했다. 조금은 가다듬어야겠지만 젊은 선수라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켈시는 시즌 전초전인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에서 김종민 감독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 입국 후 자가격리 기간을 가졌고, 컨디션을 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도로공사는 예선 전패로 쓸쓸하게 짐을 쌌다. 당시를 떠올린 켈시는 “새로운 리그에서 새로운 팀과 경기를 뛴다는 것 자체에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시즌이 개막하고도 한국도로공사는 1라운드 1승 4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켈시는 시즌 첫 경기에서 20점을 기록했지만 성공률이 29.31%에 그쳤다. 당시 김종민 감독은 “경험이 부족한 게 단점이다. 좋아지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켈시 기록은 상승폭을 그린다. 1라운드 공격 성공률 36.43%에서 4라운드가 끝난 시점에 40.14%(4라운드 한정 45.64%)로 수직 상승했다. 달라진 모습이다. 김종민 감독의 말처럼 점프력 하나는 대단했다. 세터와 호흡이 맞기 시작하자 타점이 제대로 잡혔고, 블로킹 능력 또한 준수했다. 득점 4위, 후위 공격 1위로 활발히 코트를 뛰어다니고 있다.

한국리그? 이젠 적응 완료!
켈시와 인터뷰 전날(1월 5일) 한국도로공사는 KGC인삼공사를 꺾고 3연패를 끊어내며 최하위에서 벗어났다. 중심엔 켈시가 있었다. 23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결정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승리와 함께 수훈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는 경기 다음날(6일) 진행됐다. 밝은 모습으로 나왔다. 그는 “요즘 몸 상태가 좋다. 컨디션 조절도 잘하고 있고, 감독님께서 새해에는 기분 좋게 시작해보자고 하셨는데 그 말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

한때 팀이 6연패로 분위기가 처졌을 때 IBK기업은행을 만나 역전승을 거둔 후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동안 켈시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걸까. 이 물음에 모든 외국인 선수가 입 모아 말하듯 켈시 역시 같은 답변을 내놨다.

“경기 수가 많아서 힘들었다. 생활적인 측면에선 소통이 어렵더라도 통역이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경기씩 있으면 편했을 텐데...빡빡해서 어려웠다.”

V-리그는 경기 일정이 촘촘하다. 3~4일 간격으로 경기가 잡혀있는 건 물론, 휴식 기간이 짧다. 외국인 선수가 V-리그 적응에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들은 항상 처음이 어려웠다고 답하곤 한다. 여기에 공격 점유율이 높은 외국인 선수인 만큼 체력 소모는 배가 될 터.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금 켈시는 숱한 마음고생과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팀과 리그에 녹아들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켈시는 “팀 문화에 적응했다. 6개월 정도면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 아닌가? 다만 아쉬운 건 적응을 떠나서 코로나19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라며 웃었다.

팀 내에서는 문정원이 많은 도움을 줬다. 팀 문화를 설명해주고, 켈시와 대화도 자주 나눴다. 문정원이 표지를 장식한 <더스파이크> 12월 호를 봤냐는 물음에 켈시는 “한글로 쓰여 있어 읽지는 못했지만 사진은 봤다. 이뻤다”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삼겹살, 닭발…I love Korean food”
켈시는 한국 음식을 ‘애정’한다. 보통 음식 적응에 힘겨워하는 선수를 위해 구단은 입맛에 맞는 식단을 제공하거나, 국내 선수들과 다른 만찬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켈시는 처음부터 한국 음식이 입에 맞았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거리낌 없이 밥을 먹었다. 가장 처음 먹은 음식은 라면이었다. 최애 음식은 삼겹살이다. 켈시는 삼겹살에 쌈장을 푹 찍어 쌈을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매운 닭발도 잘 먹는다. 여기에 돼지국밥도 추가다. 음식만 놓고 보면 한국인이나 다름없다. 한국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켈시는 웃으며 말했다. “자가격리 2주가 끝나고 숙소에 와서 처음 밥을 먹었을 때 정말 좋았다. 처음 먹은 건 라면이었다. 삼겹살을 쌈 싸 먹는 것도 좋아한다. 가리는 것 없다. 한국 음식이 마음에 든다.”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주영 통역에게 물었다(켈시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켈시가 스스로 음식도 해서 먹나요?”라고. 그러자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그는 “개인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대부분 배달 음식이다. 시켜 먹기만 한다”라면서 “한 번은 내가 ‘재료를 사다 줄 테니 음식을 한번 해 먹어 볼래?’라고 물어봤지만 켈시가 격하게 거절했다”라며 웃었다. 켈시는 한국 생활의 모든 면에 만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건 쉽지 않다. 주위에 팀 동료들이 있지만 가족들이 해소해주는 외로움은 따로 있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커 보였다. “한국 생활은 좋다. 적응도 했고, 다 좋지만 친구,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것만 빼면 괜찮다. 연락을 자주 하긴 하지만 시차가 잘 맞지 않는다.”


운동DNA에 적극 지원까지
한국에 오기 전 켈시는 2019-2020시즌을 스위스 VC 칸티 샤프하우젠 소속으로 뛰었다. 스위스 리그 득점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켈시는 11살 때 처음 배구공을 만졌다. 주변의 영향이 컸다. 친구들이 배구를 먼저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켈시도 얼떨결에 함께 어울렸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적극 지원에 나섰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줬다.

운동선수 집안이다. 삼남매 중 둘째인 켈시다. 오빠와 남동생은 축구를 했고, 아버지는 농구선수 출신이다. 탄력과 점프력을 물려받았다. 켈시는 “아버지가 운동선수의 고충을 잘 아신다. 가끔 조언하지만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라며 장난스레 말했다.



V-리그에 도전하게 된 계기도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다. 2018-2019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두 시즌을 IBK기업은행에서 보낸 어도라 어나이와 한국도로공사에 잠깐 몸담은 테일러 쿡, 그리고 에이전트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켈시도 테일러 쿡의 만행(?)을 아는지 이름을 언급할 때 살짝 멋쩍다는 듯 이야기했다).

켈시는 그들에게 들었던 한국리그의 특징과 생활적인 면에 관해 설명했다. “한국은 기술적이면서도 고급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기간에 경기가 많고, 경쟁이 매우 치열한 리그라고 하더라. 선수들 간 끈끈함이 있고 열정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스위스는 팀이 많은데 경기 수가 적다. 여기는 팀은 적지만 경기가 많다. 대비된다.”

GS칼텍스에서 뛰고 있는 러츠는 미국 대학리그에서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한다. 켈시는 “GS칼텍스 경기가 다가올 때면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다. 공감해 줄 수 있는 미국 선수와 같은 리그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편하고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켈시의 첫인상을 본 사람은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이고 생각할 수 있다. 컵대회 때도 그랬고, 시즌 초반만 해도 그런 성격인 줄만 알았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내성적인 것보다는 낯을 가린다. 평소에 성격은 엄청 쿨하다. 잘 웃기도 한다. 아마 적응이 되지 않아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실제 성격은 정말 쿨하다. 켈시는 사진 촬영 때 그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 스타일로 나타났다. 청스키니진에 라이더 자켓, 그리고 개성 넘치는 헤어스타일까지.

켈시에게 직접 ‘코트 안과 밖의 성격이 다르냐’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켈시는 “나는 쿨한 스타일이다. 쿨하면서도 침착하다”라면서 “코트 안과 밖의 성격은 다르지 않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밖에서 바라보는 분들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더라.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소리를 많이 듣긴 했다”라며 웃으며 답했다.

통역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켈시가 말한 ‘쿨’한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김주영 통역도 “정말 시크하다. 내성적인 건 없다. 처음 만났을 때 낯을 가리긴 했어도 금방 친해지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팬들 응원에 힘 불끈
“발전하는 모습 기대해주세요”

정규리그 후반기에 들어 김종민 감독은 켈시의 공격 비중을 높이고자 한다. 김 감독은 “켈시의 점유율을 좀 더 높이겠다. 경기할 때는 물론 훈련할 때도 본인이 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된 상황에서 좋은 모습이 나왔다. 점유율이 줄었을 땐 준비 과정이나 미팅 감각이 부족했다”라고 설명했다.

높은 점유율은 외국인 선수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좋지 않게 올라온 볼까지 모두 처리해야 한다. 그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이 뒤따른다. 켈시는 “한국에 오기 전 뛰었던 팀에서도 그런 역할이었지만 한국이 좀 더 어렵다고 느꼈다. 모든 팀의 실력이 비슷하고, 컨디션에 따라 좌우되는 경기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 워낙 많아서 더 혼란스럽다. 하지만 자신감을 가지겠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겠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목표는 단연 팀 우승이다. 개인적인 목표를 묻자 켈시는 “기술적으로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장점은 후위 공격이고, 높은 타점을 가지고 경기를 풀어가는 타입이다. 여기서 욕심을 부리자면 지금 실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서 팀에 큰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켈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시즌을 무사히 잘 치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팬분들께는 무관중이라서 직접 찾아와서 응원은 못 하겠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이나 게시물을 보면서 힘을 많이 받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린다.”

동료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했다. 켈시는 “시즌이 쉽지 않은데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본보기가 되어 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좋은 결과만 있길 바라며, 내가 더 힘내서 좋은 추억 만들어주고 싶다. 파이팅하자”라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매번 달라지는 켈시의 헤어스타일?
켈시는 옷 입는 스타일에 따라 머리에 다양한 변화를 준다. 경기가 있는 날엔 하나로 높게 묶어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올백 머리로 깔끔한 모습. 구단 프로필 사진을 찍었을 땐 반묶음으로 여성스러움을 나타낸 모습. 그리고 사복을 입고 외출을 할 땐 앞머리를 두 가닥으로 땋아 옆으로 넘겼고, 뒷머리는 자연스러운 곱슬머리가 돋보이는 모습이다. 켈시는 내리는 게 마음에 들어서 항상 이 스타일을 유지한다고. (머리 한 가닥을 땋는 덴 2분 정도가 걸리지만, 가끔 전체를 땋고자 할 땐 몇 시간이 걸린다는 켈시의 말.)

가고 싶은 곳은 제주도와 도쿄
한국에서 반년 정도를 보내고 있지만, 코로나19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그래도 상황이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에는 김주영 통역과 함께 부산, 대구, 서울 등 여러 곳을 구경했다고 한다.
켈시는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제주도다.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싶다. 한국에서 가까운 도쿄도 언젠가는 꼭 가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그 날을 기다리는 켈시다.

쉬는 날에 켈시가 주로 하는 건?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특히 틱톡(Tick Talk)을 많이 한다. 그리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시청하기도 한다.

켈시의 ‘마니또’는 누구였을까?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12월에 ‘마니또 게임’을 했다. 켈시의 마니또는 남광구 수석코치였다. 에어팟 프로를 선물로 받은 뒤 켈시가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켈시는 “배구 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있어서 즐거웠고, 귀여웠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함께 해줘서 고마워 친구야!
켈시가 김주영 통역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을 해줘서 고마워.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도움이 많이 돼. 앞으로도 잘 부탁해(웃음).

김주영 통역이 켈시에게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만난 건 나에게 정말 행운인 것 같아. 켈시 네가 미국인이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서 정말 좋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다치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언제나 옆에 있어 줄게! 고마워!
(김주영 통역은 캐나다에서 12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글. 강예진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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