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던 소년 에디, 꿈을 이룬 청년이 되다

김희수 / 기사승인 : 2023-06-20 19: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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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몽골의 한 소년이 부푼 꿈을 안고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그의 꿈은 단 하나, 대한민국에서 배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소년이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했고, 낯선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도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꿋꿋이 버텼다.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만으로. 2023년 4월, 소년은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했고, 삼성화재의 푸른색 유니폼을 입으며 마침내 오랜 꿈을 이뤘다. 막연했던 꿈을 꾸던 소년에서, 꿈을 이룬 청년이 된 남자, 그의 이름은 에디다.

 

Q. 안녕하세요! <더스파이크>와는 2년 2개월만에 다시 만납니다. 그 때 기억이 좀 나시나요?

네, 기억나요. 지금도, 그 때도 신기하긴 하지만 긴장은 별로 안 됩니다(웃음).

 

“‘몽골 선수들은 이렇게 잘 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 같아서 뿌듯해요”
Q. 우선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 이야기를 먼저 해볼게요.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와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 참가가 불발된 이후, 아시아쿼터 제도가 도입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정말 좋았어요. 이게 나와 바이라(OK금융그룹 바야르사이한)에게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했어요. 소식이 나오자마자 바로 참가를 결정했고, 가족들한테도 아시아쿼터에 대해 설명한 뒤 참가 의사를 밝혔죠.

Q. 트라이아웃은 제주도에서 진행됐습니다. 본격적인 행사를 앞두고 도착한 선수들끼리 워크샵이 진행됐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과 만난 기분은 어땠나요? 서로 대화를 나눴나요?
경기를 하기 전까지는 서로 이름 정도만 알고 지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하이~’하고 인사하는 정도? 훈련장에서 같이 몸 풀 때부터는 조금씩 대화하면서 친해졌어요. 아, 몽골 선수들에게는 바이라와 같이 바로 찾아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요. 한국에 대한 설명도 많이 해줬고요.

Q. 1일 차 연습경기를 치른 뒤에 ‘해볼 만하다, 뽑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네요.
네, 들었어요(웃음).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해봤을 때, 내 공격이나 서브가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2일 차에는 연습 경기에 앞서 감독과 선수의 면담이 진행됐죠. 몇몇 참가자들은 연습 경기보다 더 떨리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어땠나요.
아무래도 저는 한국어를 잘해서 크게 긴장될 것은 없었어요. 감독님들이 하시는 질문에 답변을 잘하자는 생각만 했죠.

Q. 면담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간 팀이나 나를 뽑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팀이 있었나요?
삼성화재입니다(웃음). (의도가 다분한 답변 같은데요?) 진심이에요(웃음). 계획된 멘트 아닙니다. 원래도 삼성화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다른 팀 감독님들도 저와 바이라에게 시선을 많이 주시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삼성화재의 관심이 느껴졌어요.

Q. 2일 차 연습 경기는 이틀 연속 경기라 체력적으로도 쉴 시간이 모자랐고 포지션까지 옮겨야 했던 상황이었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첫날에는 미들블로커로 뛰어야 해서 블로킹 리딩이 어려웠어요. 또 미들블로커는 뛰어야 하는 경기 수가 많았어요. 현장에 미들블로커 숫자가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2일 차가 체력적으로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한국에서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Q. 그렇게 운명의 날이 찾아오고, 에디 선수는 삼성화재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습니다. 6년을 기다려온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어떤 기분이었나요.
진짜, 너무너무 좋았어요. 할 말을 잃을 정도로요.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정말 꿈을 이룬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어요.

Q. 꿈을 이뤄준 팀의 감독이 김상우 감독님이라는 점도 에디 선수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를 성균관대에 데리고 와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던 분이, 프로팀에서도 또 거둬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너무 좋았어요. 새로운 시작을 감독님과 항상 함께하게 돼서 기뻐요.

Q. 수성고의 푸제 선수처럼 에디 선수가 걸어온 길을 뒤따르는 후배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된 기분은 어떤가요.
저도 그런 존재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6년 동안 힘든 시간을 버텨왔고, U-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덕에 ‘몽골 선수들은 이렇게 잘 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 같아서 뿌듯해요.

Q. 몽골의 가족들은 1순위 지명 소식을 듣고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1순위로 뽑힌 다음에 많은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해야 해서 1시간 정도는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었어요. 바쁜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가족, 친척, 친구들한테 연락이 엄청 와있더라고요. 어머니는 “잘했다,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을 거다.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바이라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바이라와 함께 서로를 응원해주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거의 가족 같은 존재랄까요”
Q. 이제는 곧 V-리그에서 마주하게 될 두 사람 이야기를 좀 나눠볼게요. 먼저 김상우 감독 이야기를 해볼까요? 훈련이나 몸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삼성화재나 김상우 감독의 케어를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께서 우선 다치지 말라고 강조하셨고, 웨이트 트레이닝 강도를 더 올리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계속 몸을 만들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Q. 에디 선수는 트라이아웃 1일 차 연습 경기 뒤 김상우 감독을 “무서운 분?”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성균관대 시절 감독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웃음)? 바이라가 한 거 아니고요? 감독님은 카리스마 있고, 선수들을 딱 잡아주는 중심이 돼주시는 분이에요. 지도력도 좋으신 분이었죠. 하지만 자유 시간에는 선수들을 정말 편하게 해주시는 분이었어요.

Q. 김상우 감독은 드래프트 이후 인터뷰에서 에디 선수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어요. 함께 했던 순간들 가운데 가장 즐거웠거나 행복했던 순간이 있나요.

음...갑자기 이야기하려니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4강이었는지 결승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블로킹을 잡고 나서 감독님과 하이파이브를 했던 순간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결국 졌던 경기라서 아쉬움이 컸고 저는 경기가 끝난 뒤에 울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우는 저를 안아주셨어요. 아쉬웠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죠. 고성에서 홍익대랑 붙었던 경기에요. 2021년인가...? 정확히 어떤 대회인지는 지금 기억이 안 나요(에디가 말했던 경기는 고성에서 펼쳐진 2021년 U-리그 결승전이었다. 당시 성균관대는 홍익대에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했다).

Q. 김상우 감독과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더 발전했을 텐데, 다시 만날 감독님께 보여주고 싶은 것 가운데 가장 발전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서브랑 블로킹? 아 참, 수비도요(웃음).

Q. 이제 다음 시즌이 시작되면 또 김상우 감독의 혹독한 훈련과 피드백을 버텨내야 합니다. 시즌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독님께 각오와 인사를 좀 전해볼까요?
팀에 합류하면, 열심히 해서 잘 버텨내겠습니다(웃음).

Q. 에디의 배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죠. 바로 바야르사이한 선수입니다. 이번 트라이아웃 일정도 함께 했죠. 에디에게 바이라는 어떤 존재인가요?
바이라가 나보다 한 살 형이에요. 몽골에서는 세 살 차이 정도는 친구로 지내서,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죠. 그러면서도 형 같은 존재이기도 해요. 힘들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죠. 바이라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바이라와 함께 서로를 응원해주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거의 가족 같은 존재랄까요.

Q. 바이라의 지명이 예상보다 뒤로 밀리면서, 에디도 마음이 조금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OK금융그룹에 4순위로 지명됐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친구가 선발됐으니 당연히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바이라라면 더 일찍 뽑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4번째라는 순위가 조금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Q. 친구 말고, 에디가 보는 배구 선수 바야르사이한은 어떤 선수인지도 궁금합니다.
선수로서는 언제나 열심히 하고, 파이팅 좋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열정이 있는 선수죠. 공격적인 재능이 돋보이죠. 미들블로커 중에 바이라 정도로 강한 서브를 때리는 선수가 많지 않잖아요.

Q. 바이라와 에디는 선수로서의 공통점도 많잖아요. 나이와 신장도 비슷하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함께 V-리그에 입성하면 라이벌 관계가 더 부각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느끼나요.

제가 말솜씨로는 밀리지만, 배구로는 밀리지 않을 겁니다(웃음). 자신 있어요.

Q. 마침 말솜씨 이야기가 나왔으니 물어볼게요. 트라이아웃 내내 바이라 선수와 같이 인터뷰할 상황이 많았는데, 바이라 선수가 말을 워낙 잘하잖아요(웃음). 에디 선수가 “같이 인터뷰하면 맨날 내가 밀린다”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 처음 한국에 올 때부터 바이라가 더 한국어를 잘했는지 궁금합니다.
바이라가 저보다는 말이 좀 많고, 적극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말 잘합니다. 인정해요. 한국어 발음 같은 것은 제가 더 좋은 것 같은데...(웃음) 바이라는 듣고 싶은 말을 잘 해줘서 그런 것 같아요.

Q. 같은 꿈을 꿔왔고 또 함께 이룬 동반자이자, 이제는 상대로 만나게 될 바이라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전에 둘이 같이 인터뷰할 때 바이라가 했던 말이 있어요. 우리가 언젠가 프로에서 만날 테니, 긴장하고 기대하라고 했거든요. 저도 똑같이 돌려주겠습니다. 긴장하고, 기대해(웃음).

“최근에는 성적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삼성화재는 삼성화재라고 생각해요”
Q. 드래프트에서 선발되기 전에, 삼성화재라는 팀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고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V-리그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역사가 깊은 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죠. 최근에는 성적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삼성화재는 삼성화재라고 생각해요.

Q. 아쉽게도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삼성화재의 암흑기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에디 선수의 역할이 꽤 중요해 보이는데, 부담은 없나요.
부담은 딱히 없어요. 내가 가서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Q. 삼성화재에서 쓰고 싶은 등번호나 응원가가 있을까요?
지금 14번을 쓰고 있어서, 가능하다면 그대로 달고 싶어요. 응원가라고 하면 옛날 요스바니의 ‘바니바니’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뭐 제가 고르지 않아도 삼성화재에서 잘 만들어주실 것 같은데요(웃음)? (오, 삼성화재에 딱 14번이 비어 있어요.) 진짜요? 이런 우연이! 좋아요! (14번은 언제부터 단 등번호인가요?) 순천제일고 시절부터 14번을 썼어요. 성균관대에 와서는 강우석(현 한국전력) 선수가 14번을 써서 잠시 1번을 달았다가, 강우석 선수가 졸업하고 14번을 바로 달았어요.

Q. 에디 선수는 계속해서 아포짓을 원해왔죠. V-리그에서 아포짓은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활약을 펼칠 자신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웃음). 여전히 아포짓에서 뛰길 원해요. 그러니 더 열심히 해봐야죠. 이제는 팬분들도 오타케(우리카드)나 제가 있으니 아포짓 자리에 더 다양한 선수들이 뛸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지 않을까요?

Q. 이제 V-리그에서의 첫 시즌이 다가오는데,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팬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기대돼요. 경기장에 많이 찾아주실 테니까요. 아까 말씀하신 응원가도 기대되고요.

*BONUS - 에디의 있다? 없다?
1. 배구가 너무 힘들어서 몽골로 돌아가려고 한 적이 있다? 없다?
없다! 물론 힘들 때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랍니다(웃음).

2. 바이라보다 드래프트에서 먼저 뽑힌 사실에 뿌듯한 적이 있다? 없다?
있다(웃음). 바이라한테는 딱 한 번 놀려봤습니다. 트라이아웃 때 바이라와 같은 방을 썼거든요. 가끔 몽골 친구들이 우리 방에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리면 제가 문 근처 쪽 침대를 쓰다 보니 더 가까워서 제가 문을 열어줬어요. 지명이 끝나고 나서 몽골 친구들이 우리 방문을 두드릴 때 ‘나 1순위라서 문 안 열고 쉬고 싶은데~’ 하고 장난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바이라가 그런 건 상관없다고 해서, 결국 또 제가 열었어요.

3. 몽골 출신이라고 얘기하면 징기스칸/게르/승마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없다?
있다. 와, 무조건이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있다, 있다, 너무 있다(웃음). 그런 얘기 너무 많이 들어요. 와, 진짜 너무 힘들어요. 저는 게르에서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들어가 본 적은 많죠. 말도 타본 적은 있지만, 별로 잘 타지는 않아요.

Q. 마지막으로 조만간 만나게 될 삼성화재 팬 분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과거 삼성화재 영광의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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