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봄의 전령사를 넘어선 ‘봄의 악마’다.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2차전이 치러진 28일, 인천 계양체육관 코트 위에서는 약간의 갈등이 발생했다. 안드레스 비예나(등록명 비예나)가 상대 코트를 바라보면서 과한 액션과 포효를 한다는 대한항공 쪽의 어필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코트 분위기가 다소 싸해졌다. 특히 3세트에 갈등의 당사자가 됐던 정지석은 비예나의 옛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의정부 경민대학교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겨 치러진 3차전에서 이 신경전의 승자는 명확하게 가려졌다. 정지석이 비예나를 완벽하게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날 정지석은 1세트부터 비예나를 괴롭혔다. 8-4에서 비예나의 직선 오픈 공격을 완벽한 블로킹 코스 선정으로 차단했다. 이후 원정 팬들을 향한 격한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한 정지석이었다.
정지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13에서 비예나의 퀵오픈을 또 한 번의 단독 블로킹으로 차단했고, 세리머니를 또 한 번 선보였다. 그런가하면 20-14에서는 비예나의 백어택에 맞춰 블로킹을 뜨는 듯하다가 마지막에 손을 빼서 범실을 유도하는 여우같은 플레이까지 선보였다. 안 그래도 경기가 풀리지 않던 비예나가 평정심을 잃기에 충분한 순간들이었다.
이후 카일 러셀(등록명 러셀)의 맹활약으로 2세트도 대한항공이 잡은 뒤, 3세트에는 KB손해보험이 초반부터 기세를 올리면서 경기의 흐름이 KB손해보험 쪽으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의 적절한 용병술과 정한용의 분투로 점수 차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21-20에서 야쿱의 안테나 반칙이 나오면서 20점대에서 동점이 됐다.
그 순간 정지석이 또 한 번 비예나를 울렸다. 23-23에서 비예나의 전력을 다한 직선 공격을 또 한 번 견고한 직선 코스 차단으로 가로막았다. 최초 판정은 블로커 터치아웃이었지만, 비디오 판독을 거쳐 블로킹 득점으로 정정됐다. 대한항공이 3세트에 처음으로 리드를 뺏은 순간이었다. 이후 대한항공은 듀스 접전에서도 끈질기게 리드를 지켰고, 결국 27-26에서 나경복의 파이프를 최준혁이 블로킹으로 차단하며 승리를 완성했다.
이 마무리에도 정지석의 간접적인 기여가 있었다. 비예나가 정지석에게 틀어 막히면서 공격 컨디션을 올리지 못하는 바람에, 황택의로서는 나경복이 후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쪽을 선택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독 봄배구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정지석의 이날 비예나를 상대로 한 활약은 봄의 전령사 같은 표현보다는 ‘봄의 악마’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보였다. 영리한 사이드 블로킹으로 그야말로 악마같이 비예나를 괴롭혀 그를 쓰러뜨렸다. 어쩌면 이틀 전의 신경전이 정지석의 악마 본능을 일깨운 것은 아닐까. 이유야 어쨌든 그의 활약은 이날 경기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활약이었음이 분명했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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