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의 눈높이 역시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팬들은 이제 더욱 디테일한 것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 팬들을 위해 <더스파이크>가 ‘작전판’ 코너를 준비했다. 현장에 있는 배구인들의 이야기와 경기 중의 실제 사례의 분석을 통해 팬들이 더 재밌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작전판’의 네 번째 주제는 코트 위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스위치 플레이, 더블 스위치와 좌우 스위치다. 두 가지의 스위치 플레이는 어떤 상황에서 하게 되는지, 또 어떤 포인트가 중요한지를 짚어본다.
쉴 새 없이 상대를 몰아붙여라
더블 스위치의 핵심은 ‘업 템포’
먼저 소개할 스위치 플레이는 더블 스위치다. 더블 스위치는 두 명의 선수를 동시에 바꾸는 교체 전술을 일컫는다. 물론 전술적인 이유로 동시가 아닌 시간차로 선수를 교체하는 더블 스위치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한번에 2:2 교체가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더블 스위치가 가장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포지션은 세터와 아포짓이다. 아포짓이 1번 자리로 가면서 서브를 넣어야 할 때, 아포짓 대신 서브 세터가 서버로 나서고 4번 자리로 올라가는 세터 대신 서브 아포짓이 전위에 위치하는 방식이 정석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더블 스위치는 왜 하는 걸까? 이를 위해서는 배구의 로테이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배구는 코트를 2줄-3칸으로 6등분했을 때 우측 최하단을 1번으로 두고 반시계 방향으로 2~6번 자리를 차례로 도는 로테이션 시스템에 따라 경기가 진행된다. 코트 앞쪽인 2~4번 자리를 전위, 코트 뒤쪽인 5~6번과 1번 자리를 후위라고 부른다. 블로킹은 전위에 있는 선수들만 할 수 있고, 공격 효율 역시 네트에 가깝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덜한 전위 공격이 후위 공격보다 잘 나오는 편이다. 따라서 전위에 키가 크고 공격력이 있는 선수들이 머무는 로테이션이 팀의 강점이 되고, 반대로 그런 선수들이 후위로 물러나게 되는 로테이션이 팀의 약점이 되는 것이다.
더블 스위치는 일반적으로 키가 작고 공격 옵션이 거의 없는 세터가 전위에 있어야 하는 세 자리를 서브 아포짓 투입으로 넘길 수 있기 때문에, 강점이 되는 로테이션을 길게 만들고 약점이 되는 로테이션은 짧게 만들 수 있는 전술이다. 쉽게 말하면 사이드 아웃과 브레이크가 약해야 하는 타이밍을 교체를 통해 오히려 강한 타이밍으로 바꿔서 계속 경기의 템포를 올릴 수 있는 ‘업 템포’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이 더블 스위치의 존재 의의인 것이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더블 스위치는 안 할 이유가 없는 무결점의 전술 같지만, 더블 스위치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서브 세터와 아포짓의 퀄리티다. 아무리 서브 아포짓이 세터보다 키가 크고 공격력이 있다 해도, 전위에서 확실한 위력을 보여줄 수 없으면 상대 블로커는 서브 아포짓을 버리고 다른 옵션을 견제하게 된다. 그러면 오히려 다른 공격수들의 부담만 가중시켜주는 꼴이 된다. 또한 서브 세터가 후위에서 적절한 서브와 경기 운영을 보여주지 못하면 전위 공격력이 강한 로테이션이 길어져도 팀의 전체적인 레벨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경기의 흐름을 내주게 된다.
이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더블 스위치를 V-리그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팀이 바로 지난 시즌까지의 대한항공이었다. 주전 세터 한선수에 뒤지지 않는 최고의 서브 세터 유광우를 보유하고 있고, 외인 아포짓 이상의 높이와 화력을 갖춘 서브 아포짓 임동혁도 버티고 있었다. 대한항공이 1~2점의 아슬아슬한 리드 상황에서 더블 스위치를 통해 어려운 로테이션을 넘기고 템포를 올려 세트의 승기를 굳히는 장면은 거의 매 경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그 대한항공조차도 임동혁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면서 서브 아포짓의 퀄리티가 약간 떨어진 이번 시즌에는 더블 스위치를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번 시즌 여자부에서 더블 스위치를 잘 활용하는 팀으로는 현대건설이 있다. 황연주라는 여전히 건재한 서브 아포짓의 존재로 인해 모마와 김다인이 흔들릴 때나 전위 강화가 필요할 때 김사랑과 함께 더블 스위치를 가져가곤 했다.
더블 스위치가 무결점 전술이 아닌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배구에서는 세트당 교체 카드를 총 6회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더블 스위치를 하게 되면 2:2 교체를 두 번 해야 하기 때문에 4회의 교체 카드를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더블 스위치 이외의 교체카드를 2회 밖에 사용할 수 없으므로 원 포인트 서버나 블로커 기용 1회 정도만이 가능해진다. 갑자기 타 포지션에서의 컨디션 난조나 긴급한 전술 수정 필요성 등이 발생하면 대처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는 이러한 교체 카드 4회 소진의 위험성이 해프닝으로 드러난 적도 있다. 2월 5일 GS칼텍스와 페퍼저축은행의 5라운드 맞대결에서 이영택 감독은 3세트 24-21에 실바-김지원을 안혜진-김주향으로 바꾸는 더블 스위치 작전을 썼다. 그러나 연속 실점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음에도 실바를 다시 넣지 못했다. 앞서서 유서연을 김미연으로 바꾸면서 교체 카드 1회를, 또 권민지와 이주아를 교대하면서 교체카드 2회를 소진해 교체 카드가 3회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블 스위치를 했기 때문에 교체카드는 1회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안혜진을 빼고 실바를 넣으면 코트 위에 세터가 없는 상황에서 실바의 후위공격을 만들어야 하는 괴상한 상황이었기에 이 감독은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GS칼텍스는 3세트 역전패를 당한 뒤 경기에서도 패하고 말았다. 더블 스위치의 교체카드 다량 소진으로 인한 위험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공격 위치와 동선의 효율성
좌우 스위치의 양자택일
더블 스위치 못지않게 코트 위에서 중요한 스위치 플레이가 있다. 바로 좌우 스위치다. 좌우 스위치는 공격 상황에서 로테이션상 왼쪽에 있는 선수가 오른쪽으로 이동(또는 반대 방향으로)해서 공격을 준비하는 플레이를 말한다. 가끔 경기를 보다보면 공격수가 상대의 서브가 시작되는 순간 코트를 가로지르거나 밖으로 크게 돌면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좌우 스위치를 시도하는 장면이다.
좌우 스위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격수들이 최적의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이다. 아웃사이드 히터들은 코트 왼쪽에서, 아포짓은 코트 오른쪽에서 공격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공격수들의 위치 선정이다. 아웃사이드 히터의 과거 명칭이 레프트, 아포짓의 과거 명칭이 라이트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1~6번 자리를 차례로 거쳐야 하는 배구의 로테이션 시스템 특성상 아포짓이 왼쪽에서, 아웃사이드 히터가 오른쪽에서 시작해야 하는 자리는 반드시 발생한다. 이렇게 됐을 때의 공격 효율 저하를 피하기 위해, 로테이션으로 인한 위치 강제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상대의 서브가 시작되는 타이밍에 각자가 공격하기 좋은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왼손잡이 공격수를 보유한 팀들의 경우 특히 좌우 스위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오른쪽으로 살짝 쏠려 있는 세터의 위치‧연결의 높이-위치에 대한 의존도 등의 다양한 이유로 왼손잡이 공격수가 왼쪽에서 공격 각도를 만드는 것이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왼손잡이 공격수는 왼쪽에서 시작하는 로테이션에서 상대 서브가 시작되자마자 전위에 바짝 붙어서, 혹은 후위로 크게 돌아서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좌우 스위치의 경우 명백한 약점도 존재한다.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공격수의 동선 때문에 플레이의 효율이 저하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리시버의 동선을 방해하거나, 미들블로커의 속공 스텝을 밟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공격수가 익숙하지 않은 공격 위치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팀의 공격 옵션 최대 활성화를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고 정 위치에서 플레이하는 팀도 있다. 결국 좌우 스위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공격 위치의 조정과 동선의 효율성 극대화 중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둘지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시즌 좌우 스위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팀은 한국도로공사다. 왼손잡이 아포짓인 니콜로바가 오른쪽 공격을 선호하기 때문에, 니콜로바가 4-5번 자리에서 시작하는 로테이션일 때 상대 서브가 시작되자마자 부지런히 달려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매 경기 볼 수 있다. OK저축은행 역시 신호진이 아포짓으로 나설 때 좌우 스위치를 잘 활용한다. 신호진은 니콜로바에 비해서는 왼쪽 공격을 구사하는 빈도가 있는 편이지만, 선수 본인의 라이트 플레이 선호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잦다. 심지어 리시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리시브를 받고 엄청난 스피드로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서 백어택을 구사하는 플레이까지 선보인다.
반대로 좌우 스위치를 포기하고 동선의 효율을 추구하는 팀도 있다. IBK기업은행은 황민경 2번-최정민 3번-빅토리아 4번 로테이션에서 빅토리아를 오른쪽으로 돌리지 않고 정 위치에서 공격 작업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왼쪽 공격이 보다 수월한 빅토리아를 믿고 동선의 효율을 추구하는 선택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원래는 좌우 스위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팀이었지만, 이번 시즌 요스바니 에르난데스가 있을 때 요스바니 2번-정지석 4번 로테이션에서 요스바니가 정 위치 플레이 하는 상황도 많이 나왔다. 아웃사이드 히터도 소화할 수 있는 요스바니의 개인 능력을 믿고 효율을 추구하는 플레이다. 그러나 요스바니보다 훨씬 클래식한 아포짓인 러셀이 합류한 만큼 대한항공은 다시 좌우 스위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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