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다시 본격적인 항해에 나선다.
대표팀은 작년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챌린저컵, 2022 아시아배구연맹(AVC)컵에서 각각 3위, 4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더 많은 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 최종 목표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지만 그보다 앞서 준비해야 하는 대회도 많다. 가장 먼저 출전하는 대회는 제4회 AVC 남자 챌린저다. 7월 8일부터 15일까지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다.
AVC 챌린저 대회는?
국내 팬들에게 다소 생소한 대회일 수도 있다. 올해로 3회째(대회명은 제4회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열리지 않았다)를 맞이한다. 2018년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초대 대회가 열렸다. 격년제다. 2022년 키르기스스탄의 촐폰아타에서 두 번째 대회가 열렸다.
참가 자격은 AVC에 소속된 국가 가운데 FIVB가 주최하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와 발리볼챌린저컵에 나가지 못하는 국가들이 대상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이 대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VNL과 발리볼챌린저컵 출전자격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이제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AVC 챌린저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이번 대회는 17개 국가가 참가한다. 1회 때는 8개 국가가, 2회 때는 고작 4개 국가가 우승컵을 두고 격돌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대회 규모가 커졌다. 성격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호주, 태국, 인도네시아 등 12개 국가가 처음으로 AVC 챌린저 대회에 출전신청을 했다.
한국 남자대표팀에 희소식도 전해졌다. 격년제로 진행됐던 AVC 챌린저 대회는 올해부터 해마다 열리는 것으로 변경됐다. FIVB가 요구하는 랭킹 포인트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회를 해마다 개최해야 한다. 이에 따라 AVC는 대회 방식을 변경했고 이번이 시작이다. 비록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VNL보다는 랭킹포인트 비중이 낮지만 그래도 차곡차곡 점수를 쌓을 기회는 생겼다.
현재 한국 남자배구의 FIVB 랭킹은 34위다. 이 바람에 2024파리올림픽 최종예선전 출전자격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의 첫 목표는 2028 LA 올림픽을 위해 무조건 세계랭킹 24위 안에 들어가야 한다.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해 랭킹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24위까지는 올라서야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해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랭킹 포인트가 한 점 한 점이 간절한 한국에는 소중한 기회다.
이번 대회 우승팀은 7월에 열리는 2023 FIVB 발리볼챌린저컵 출전자격을 따낸다. 대표팀은 지난해 서울에서 대회를 개최하면서 VNL 출전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실패했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AVC 챌린저 대회와 발리볼챌린저컵 우승으로 2024년 VNL 참가 티켓을 따는 것이지만 우선 가장 눈앞에 있는 과제부터 끝내야 한다.
젊어진 평균연령
5월 1일, 대한배구협회는 AVC 챌린저 대회에 나서는 16인의 명단을 공개했다. 세터는 황택의(KB손해보험)와 김명관(현대캐피탈)이 선택을 받았다. 리베로는 박경민(현대캐피탈)과 오재성(우리카드)이, 미들블로커는 김규민, 김민재(이상 대한항공), 김준우(삼성화재), 박준혁과 이상현(이상 우리카드)이 이름을 올렸다. 아포짓에는 임동혁(대한항공)과 허수봉(현대캐피탈)이 뽑혔다. 아웃사이드 히터는 나경복과 황경민(이상 KB손해보험), 김지한(우리카드), 임성진(한국전력), 정한용(대한항공)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지난해 대한배구협회로부터 ‘대표 선수 강화 훈련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던 정지석(대한항공)도 대표팀에 합류했다.
처음 명단이 발표되자 많은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랫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한선수, 최민호, 신영석, 곽승석 등이 빠지고 김지한, 정한용, 김준우, 김민재 등 젊은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다. 과감한 세대교체를 확인한 뒤 선수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허수봉은 “명단을 처음 확인하고 형들이 많이 빠지고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라 놀란 것도 사실이다”고 털어놓았다. 생애 첫 대표팀에 합류한 김민재 역시 “한눈에 봐도 나를 포함한 젊은 선수들이 정말 많이 뽑혀서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30대 베테랑 선수들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다. 2028 LA 올림픽을 겨냥한 대표팀은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돼 경험을 쌓아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희망이 생긴다. 이번에 임도헌 감독이 과감한 세대교체를 결정한 배경이다. 허수봉은 “젊은 선수들이 많이 뽑혔지만 모두 V-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열심히 해서 형들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게 해야 할 것 같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남자대표팀 사령탑 임도헌 감독이 대폭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한 이유는 한마디로 ‘경험’이었다. 그는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허수봉, 임동혁, 박경민 등 젊은 선수들이 국제대회를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젊은 선수들은 성장 속도가 빠르다. 국제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어 소속팀에서 더 많은 활약을 했다”고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우승 가능성은?
이번 AVC 챌린저 대회에 참가하는 17개 팀 가운데 대한민국의 FIVB 랭킹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은 호주(39위)다. 세계랭킹으로만 본다면 무조건 우승을 해야 한다. 우승해야 본전인 대회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존심을 지키며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하지만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방심은 더더욱 금물이다. 한국은 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수월해 보이는 조 편성이지만 태국은 까다로운 상대다.
한국은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열렸던 2022 AVC컵 예선전에서 태국에 패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더군다나 최근 박기원 감독이 태국 남자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한국 배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대가 버티고 있어 지난해보다 더욱 경기하기가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도헌 감독 역시 방심하지 않고 있다. “동남아시안게임(SEA)을 지켜봤는데 태국이 지난해 열렸던 AVC컵 때보다 더 좋아졌다. 신체조건과 탄력이 좋은 팀이다. 한국 배구를 잘 아는 박기원 감독님이 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부담감 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잘 펼칠 수 있으면 좋은 경기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예선전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준비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전만큼의 강팀은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상대다. 하지만 경기 영상이나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열심히 찾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임도헌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경계하는 팀은 대만이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이기도 하고 전력이 좋아서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난해 FIVB 발리볼챌린저컵과 AVC컵에서 만났던 호주와 카타르도 참가한다. 피지컬이 부담스러운 상대다. 임도헌 감독은 “두 팀 모두 지난해 만났을 때와 비슷한 멤버로 나올 것 같다. 카타르는 귀화하는 선수가 많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번 AVC 챌린저 대회에서 한국은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임도헌 감독도 걱정은 있다. “미들블로커에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다. 국제대회 경험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 부분을 빠르게 극복해야 한다. 그것만 버텨낸다면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끝으로 대표팀의 새 얼굴인 김민재는 “남자배구를 일으키고 싶다”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 바람을 실천시키기 위해서는 2023년이 중요하다. 남자대표팀은 7월 AVC 챌린저 대회와 8월 아시아선수권,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까지 연이어 국제대회에 도전한다. 과연 임도헌호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국제무대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어 FIVB 랭킹과 남자배구 인기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글. 박혜성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DB(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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