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일 년. KB손해보험이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지난 시즌 창단 첫 최하위의 아픔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3년 만의 봄배구를 넘어 이제는 우승까지 넘본다. 이들이 황택의와 나경복을 그토록 기다린 이유, 달라진 순위표가 그에 대한 대답이다.
떡잎부터 달랐던 의정부의 심장
데뷔 시즌부터 강렬했다.
나경복 신인 때 긴장을 엄청 많이 했다. 서브든 스파이크든 블로킹이든 무언갈 하나 할 때마다 두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그럴 필요 없었는데(웃음). (남자부 최초 신인상 몰표다) 내가 잘해서 받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활약에 대한 점수를 매기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당시 감독님이 경기에 많이 넣어준 덕분이다. 그리고 그 시즌에 다른 팀으로 갔던 형들이 유독 코트를 못 밟았다. 몰표라는 얘길 들었을 때 당연히 기뻤으나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팀이 7승으로 최하위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기합이 바짝 든 시즌이었다(웃음).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황택의 처음 코트를 밟았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벤치에서 서브 때릴 준빌 하라는 거다. 그때부터 벌벌 떨었다(웃음). 신인 때는 정말 코트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한 것 같다. 정확히는 긴장 때문에 머리가 백지장이 됐다(웃음). 어리다 보니 형들도 많이 도와주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한 표 차이로 신인상 목표를 놓쳤다)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었기 때문에 내심 신인왕을 차지할 거란 기대는 있었다. 결국 받게 돼 감사하고 기뻤으나 아직도 궁금하다. 내게 투표하지 않은 기자 한 명, 혹시 누군지 알려줄 수 있나(웃음).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택의 신인 때부터 성인 대표팀에 뽑혔지만 변하지 않은 초심이 있다. 대표팀 들어가면 항상 설렘보단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진다. 모든 배구인을 대신해 나라를 대표하는 거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인 땐 긴장을 많이 해서 그 마음이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현 소속팀 동료인 박상하도 대표팀에 있었다) 그때는 (박)상하 형이 아직 이빨 빠지기 전이다. 지금은 2개 남았다(웃음). 예전엔 10살 차이라 하늘 같아 보였는데, 내 나이 서른을 먹고 상하 형도 마흔 살이 되니 서로 허물이 없어졌다.
경복 프로 4년 차쯤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는데, 운이 좋았다. 당시 레프트 형들이 워낙 잘했기 때문에 누가 아프면서 자리가 생겨 합류했다.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되게 기분 좋았다. 걸출한 선배들 옆에서 보고 배우자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했다. (태극마크, 누군가에겐 평생 꿈이다) 나 또한 성인 대표팀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그게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증명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2020년 한국프로배구 사상 처음으로 연봉 7억 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택의 2019-2020시즌이 끝나고 FA 재계약을 맺으면서 그렇게 됐다. 고연봉자인 만큼 기대치가 생겨 경기가 끝나면 전보다 욕도 많이 먹곤 했다(웃음). 힘들지만 스스로 마땅히 이겨내야 할 숙제였다. 그래도 연봉이 올랐을 때는 뿌듯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따라온다고 느껴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4-2025시즌을 마치면 다시 FA 자격을 얻는다) 신인 때부터 항상 생각한 게, 프로라면 어떠한 변명 없이 자신의 실력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금액이 얼마가 됐건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FA가 전혀 의식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거 때문에 특별히 더 열심히 하는 건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본다. 프로라면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선수의 본분이다.
2019-2020시즌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 7을 동시 석권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경복 그해 결혼도 하고, 첫 FA도 체결하고, 정규리그 MVP도 받고, 베스트 7도 처음 선정됐다. 이뿐 아니라 팀이 한창 정규리그 1위를 달리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땐 정말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기억에 정말 많이 남는 한 해다. 정규리그 MVP는 솔직히 비예나가 받을 줄 알았다. 대한항공에서 너무 잘했고 개인 기록도 앞섰다.
혜성처럼 나타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베테랑이 다 됐다.
경복 문득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을 때가 있다(웃음).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렸을 땐 뭣 모르고 뛰어다녔는데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택의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동생들을 이끌고 있더라. 지금까지 프로에 있으면서 스스로 아쉬웠거나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부분이 있다. 그걸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항상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조언하려 한다.
창단 첫 우승을 명받았습니다
늦었지만 전역 축하한다.
경복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상근이라 군인보다는 공무원에 가까웠다(웃음). 빨간 날이면 항상 쉬었다. 그런데 장난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게 더 힘들다. 원래 되게 활동적인 사람인데 계속 컴퓨터만 보고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해 미칠 뻔했다. 그래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비시즌 때는 퇴근하고 팀에서 훈련하기도 했다.
택의 난 군대 체질이 확실하다. 문경이 산속에 있는데 공기도 좋고 아침에 규칙적으로 일찍 일어날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해질뿐더러 스트레스받을 일도 거의 없어서 정신 건강에도 좋다. 요즘도 가끔 한 일주일 정도만 상무에 가서 힐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웃음). (군 시절 상무 최초 컵대회 4강을 이끌었다) 지난해 컵대회가 끝나고 휴가를 5일이나 받았다. 상무 최초 4강 진출을 기점으로 부대에서 배구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전에 있던 부대장님은 축구를 많이 좋아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스포츠는 성적순이다(웃음). 그런데 사실은 4강 진출이 목표가 아니었다. 정말 우승할 각오로 통영을 찾은 거였다. 그만큼 멤버가 좋았고 자신감도 있었다. 결과가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컵대회를 통해 다들 소속팀에서 재평가가 이뤄졌다더라. 주장으로서 뿌듯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사이 팀이 창단 첫 최하위 수모를 겪었는데.
경복 밤에는 시간이 나서 KB손해보험 경기를 자주 보러 다녔다. 다들 열심히 하는데 하나 싸움에서 밀려 자꾸 지니까 안쓰럽고 미안하더라. 경기가 끝나고 (정)민수 형을 만나면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책임감이 많은 사람이라 힘들었을 거다.
택의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지난 시즌 KB손해보험이 처음으로 최하위까지 내려앉았는데, 지켜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나 하나 들어간다고 해서 순위가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 팀을 돕고 싶었다.
천군만마 같은 복귀 타이밍이었다.
택의 천군만마라기보다는 마지막 조각을 채웠다고 생각한다. 내가 복귀하기 직전 KB손해보험이 개막 5연패까지 주저앉긴 했지만, 그때도 우리는 무조건 올라갈 거란 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경복 1라운드 도중에 복귀했는데 첫 상대가 하필 친정팀인 우리카드였다. 그래서 더 이기고 싶었는데 결국 졌다(웃음). 하지만 오히려 그때 이후로 마음이 편해지는 계기가 됐다. 언론에서 천군만마라 띄워주고 ‘나경복 더비’라 하니 내심 부담이 있었는데, 지금은 초연하다. 우리 팀의 본체는 택의와 비예나다(웃음).
말마따나 믿음직한 동료들이 있다.
경복 이번 시즌을 앞두고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왔다. 특히 상하 형이 나이가 많은데도 후배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고 더 열심히 뛰어주니, 팀이 자연스럽게 뭉치는 느낌이다.
택의 아까도 말했지만 5연패에 빠졌을 때도 우리끼리 ‘지금 KB손해보험이 이렇게 지고 있을 팀이 아니다. 무조건, 반드시 올라간다. 충분히 해볼 만한 전력이다. 방법만 찾자’ 같은 얘길 많이 했다.
개막 5연패를 딛고 어느덧 2위가 눈앞인데.
경복 나와 택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하 형까지 부상에서 돌아온 뒤 성적이 계단식으로 쭉쭉 올랐다. 최근에는 선수들 모두가 자신감에 차 있다. 이제는 누굴 만나도 쉽게 지진 않을 거라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부터 든다.
택의 서른인 내가 코트에서 막내다. 고령화가 심각하다(웃음). 형들이 알아서 해주니 내가 따로 할 게 없다. 잘 안 풀릴 때 ‘형이 해줘’ 하면 진짜 해준다. 개인적으로 순위 상승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밖에서 ‘KB손해보험 5등 코앞, 4등 임박’ 이렇게 계속 띄워줘도 무덤덤했다. 우린 애초에 거기가 목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는 데만 집중할 뿐이었다. 이제 시즌 막바지라 대한항공도 남은 힘을 쥐어짜지 않을까. 그래도 끝까지 하다 보면 언젠간 역전 2위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머지않았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끝내 2위에 오르더라도, 대한항공이 미끄러져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자력으로 만들어 낸 결과였으면 좋겠다.
비예나의 꾸준함도 컸다.
택의 밖에서 비예나에 대한 평가가 왜 박한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배구에서 키가 크면 유리한 부분은 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비예나는 작은 신장을 본인의 기술로 커버하고도 한참 남는 선수다. 게다가 득점뿐만 아니라 안 보이는 곳에서도 팀에 큰 도움을 준다. 비예나가 없었다면 KB손해보험이 이렇게까지 잘하진 못했을 거다.
경복 비예나가 너무 잘해서 내가 딱히 할 게 없다. 그렇다고 리시브를 받자니 팀에 새로 합류한 야쿱과 민수 형이 옆에서 알아서 해준다. 지금 내가 팀에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서브 한 개라도 더 때려주는 것뿐이다. 때리는 건 비예나가, 받는 건 야쿱과 민수 형이 확실하게 책임져 준다. 갈수록 설 자리를 잃는 것 같아 수비가 뛰어난 건 아니지만 하나라도 더 잡으려 하고 있다(웃음). (득점과 서브 모두 리그 순위권인데 너무 겸손한 건 아닌지) 같이 뛰어 보면 안다. 옆에서 비예나가 워낙 잘해서 내게 오픈 찬스가 많이 찾아오는 것뿐이다. 우리 모두 수비 하나만 건져주면 비예나의 손에서 득점이 날 거란 확신이 있다.
“이기나 지나 한결같이 응원해 준
팬들…이번엔 반드시 울려야죠”
팀 최다 7연승, 인상적이었다.
택의 연승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강팀이라면 연패가 없어야 한다. 이번 시즌 우리는 1라운드 때만 5연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한 번도 연패가 없다. 지금의 KB손해보험이라면 강팀 소리를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캐피탈의 17연승도 가로막았는데.
경복 현대캐피탈이 KB손해보험의 8연승을 저지했으니 그대로 한 방 돌려준 셈이다(웃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던 현대캐피탈이 우리 손에 무너지는 걸 보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바쁘게 시즌을 보내느라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가슴속에서 조금씩 다시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우리는 시즌 시작부터 항상 우승을 목표로 달려왔다. 어느덧 정규리그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다들 처질 수도 있는데, 우승 가능성을 재확인한 만큼 끝까지 힘을 내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분위기에 취하는 건 안 된다. 마지막까지 한 경기 한 경기 간절하게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항공과 5R 맞대결에선 말 그대로 경기를 지배했다.
택의 팀은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뜻대로 안 풀려서 경기가 끝나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웃음). 예전부터 대한항공만 상대하면 생각이 많았다. 대한항공을 만나면 매 경기·세트·점수마다 계속 시스템이 바뀌는 느낌을 받아서, 괜히 혼자 복잡하게 고민하다 스스로 말린다. 5라운드 때도 비예나와 경복이 형의 서브가 아니었으면 나로 인해 힘들게 갔을 거 같은데, 아까 말한 것처럼 ‘해줘요’ 하니까 해주더라(웃음). (그게 원팀이다) 동의한다. 사실 예전엔 단순히 대한항공 때문에 말리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시즌엔 행복한 고민까지 겹쳤다(웃음). 지금 우리 팀 공격수들이라면 어딜 줘도 다 때려줄 거란 믿음이 있다. 비예나와 경복이 형은 말할 것도 없고, 야쿱도 득점력이 뛰어나다. 중앙에도 베테랑들이 대기 중이다. 농담 삼아 말하는 거지만, 그래서 경기 중에 누구에게 올려야 재밌을지 혼자 생각하다가 가끔 리듬을 놓친 적도 있다(웃음).
의정부엔 벌써 봄 내음이 완연한 느낌이다.
경복 봄배구를 목표로 삼으면 항상 거기서 멈추더라. 그걸 깨달은 후로는 늘 우승을 갈망한다.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끝이 아닌 시작일 것이다.
택의 언젠가부터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 시달리기 시작했다. 우승 경험 한번 없는 놈이 무슨 리그 최고의 세터냐는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이)경수 형이나 (김)요한이 형처럼 나라를 대표하는 걸출한 선수들도, 결국 우승 트로피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평가되는 걸 보면서 많은 감정이 들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하지만, 지금 내게 그토록 바라던 우승 기회가 찾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놓치고 싶지 않다. 증명의 시간이 왔다.
절대 1강 현대캐피탈, 넘을 수 있을까.
경복 3라운드까진 게임도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후반기에 돌입하면서부터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라운드 때 우리가 셧아웃으로 이기고서는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택의 만약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마주하게 된다면 진짜 개처럼 뛸 생각이다. 상대보다 내가 더 힘들고 내가 더 땀이 나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못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누구와 붙든, 지금의 KB손해보험은 오히려 상대가 긴장해야 할 팀이라고 일러두고 싶다.
다사다난한 한 해를 잘 이겨냈다.
경복 개막 직전 리베라 감독님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데 이어, 가부간 시즌 도중 라미레스 감독님의 합류까지 불발되면서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다행히 그 시기를 잘 이겨낸 덕분에 팀이 한층 단단해졌다.
택의 경복이 형과 같은 의견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어찌 보면 흔들렸기 때문에 그만큼 단단해질 수 있었다.
홈구장을 잃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는데.
경복 그 또한 전화위복이 됐다. ‘경민불패’를 이어가고 있다.
택의 ‘경민불패’라는 말이 생긴 건 결국 우리가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어수선할 때 무너졌다면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거다.
새 사령탑 아폰소 감독은 어떤 분인가.
택의 선수들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감독이다. 아폰소 감독님 같은 분이 리그에 많아진다면, V-리그 수준 자체가 올라갈 거라 본다. 우리가 한창 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 사실 질 경기를 뒤집은 날도 많았다. 아폰소 감독님이 직접 선수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지 않았다면 더 일찍 무너질 수도 있었다.
경복 열정적인 분이다. 선수들 개개인에게 자신감도 심어주고, 무엇보다 팀 분위기가 안 처지게끔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다.
팀이 어려울 때부터 함께해 준 팬들에게도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경복 KB손해보험은 팬들부터가 열정이 넘치는 것 같다(웃음). 팀에 처음 와서 들은 얘기 중 하나가, 본인은 KB손해보험이 이기든 지든 항상 응원할 테니, 나더러 부상 없이 오래만 뛰어달라 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성적으로 더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의 우리 KB손해보험 팬들이 다른 구단 팬들보다 더 팀에 진심이라 자신한다(웃음). 이 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들이란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람이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한다. 그 정도로 응원을 열심히 해주는데,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맞다.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도 선수들이 힘낼 수 있게 끝까지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고맙다. 그렇게 계속 응원해 줬기 때문에 좋은 날, 좋은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꼭 팬들에게 잊지 못할 시즌을 선물하겠다. (함박웃음을 짓게 할 건가) 아니, 반드시 울릴 거다(웃음).
이번 시즌 개인상 욕심도 있는지.
택의 개인상 생각은 없는데 은퇴하기 전에 정규리그 MVP는 꼭 한번 받아보고 싶다. 한 시즌 동안 가장 그리고 꾸준히 잘했다는 의미기 때문에 솔직히 욕심난다. 이미 수상한 적 있는 경복이 형이 부러울 따름이다(웃음).
국가대표팀 주장 황택의,
남자배구 위기론에 답하다
대표팀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경복 지난해 군인 신분일 때 시간이 나서 가끔 경기를 봤는데 다들 잘하더라.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상대로 만난 라미레스 감독님은,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어 보였다. 그 스타일을 지금 그대로 끌고 가는 느낌이다. 색깔이 보여서 좋다.
택의 협회와 연맹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 덕에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전지훈련을 진행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시간 동안 높은 팀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어느 정도 돌파구를 찾았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앞두고 있다) 최대한 포인트를 쌓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나갈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듣게 돼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적까지 따라오면 물론 좋겠지만, 최소한 경쟁력만큼은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그러기 위해선 소집되는 선수 모두 책임감을 느끼고 경기에 모든 걸 쏟아야 한다. 남자배구 위기론을 불식하고 싶다.
국제대회 경쟁력을 냉정히 평가하자면.
경복 내가 있을 땐 사실 이제 막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단계였고 지금은 어느 정도 끝났다. 좋은 감독 밑에서 젊은 선수들끼리 계속 호흡하다 보면 경쟁력이 상승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욱이 택의를 필두로 팀의 중심이 잘 잡혀있어 더 기대된다. 택의가 (김)지한이, (허)수봉이, (임)성진이 같은 재능 있는 선수들을 잘 이끌어 줄 거라 믿는다.
택의 지난해 대표팀을 하면서 그전엔 깨닫지 못했던 걸 많이 느꼈다. 무엇보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른 선수들과도 얘기를 해봤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가능성을 봤다고 하더라. 이미 돌파구를 찾았으니 이젠 뚫는 일만 남았다. 앞으로 마주할 국제대회가 부담되긴커녕 오히려 기대된다.
막내 황택의에서 캡틴 황택의가 됐는데.
택의 시간이 참 빠르다. 처음엔 내 밑으로 한 명도 없었는데 지금은 거의 최선참이다(웃음). 언젠가 주장으로서 동료들에게 올해는 핑계 댈 것도 없고, 더 떨어질 성적도 없다고 따끔하게 말했다. 지금처럼 많은 지원을 받을 때 어떻게든 더 성적을 내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지 못하면 정말로 남자배구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남자배구가 무너졌다는 말이라도 나올 때 분위기를 뒤집어야 한다. 아무도 관심 없을 때 잘해 봐야 그때는 늦는다. 이런 생각을 계속 공유하니 선수들도 마음가짐이 바뀐 것 같다. 모두가 감독님이 추구하는 방향을 쫓아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더 가능성이 보이지 않나 싶다. (사람 자체가 예전보다 묵직해진 느낌이다) 대표팀 주장이라는 게 알게 모르게 책임감이 많이 생기는 자리라 그렇다(웃음).
끝으로 표지 인터뷰 소감을 말하자면.
경복 시즌이 막바지인데, 남녀부 14개 구단 중 우리가 표지라는 건 그만큼 KB손해보험이 잘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보람이 느껴지면서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만큼은 끝에 가서 웃고 싶다. 우리카드 시절 말년에 준플레이오프에서만 두 번 연속 좌절한 기억이 아직도 쓰라리다.
택의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만큼 잘하고 있다는 얘기로 들려 뿌듯하다. (우승하면 금방 또 만날 수 있는데) 기껏 3월호 표지를 해놓고 4월호나 5월호 표지를 다른 팀에 내주고 싶진 않다(웃음). 팀에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갈 수 있게끔 마지막까지 전력을 쏟겠다.
글. 송현일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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