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다려지는 라이징 스타

스파이크 / 기사승인 : 2022-04-27 14: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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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기회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진화하는 스포츠의 묘미다. 예기치 못한 전력의 공백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고, 오늘의 스포트라이트 아래는 어김없이 또 다른 주인공이 선다. 그리고 기회는 언제나 준비하고, 낚아채는 자의 편이다.

완연한 에이스의 모습으로
대한항공 임동혁

이제 임동혁의 이름 앞에는 이전과는 다른 수식어가 붙는다. 유망주 혹은 제2의 정지석으로 평가받아왔던 그는 이제 에이스, 해결사라고 불리는 편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당시 “3~4년 이후를 본다”던 박기원 전 감독의 말처럼 임동혁은 2021-2022시즌 들쑥날쑥한 출전 기회 속에서도 53.72%의 높은 공격 성공률로 외국인 선수에 이어 가장 많은 총 419득점을 올리며 해당 부문 팀 내 2위, 리그 10위를 차지하는 눈부신 성과를 냈다.

 

임동혁은 지난 시즌 두꺼운 팀 스쿼드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퍼즐 조각 중 하나였다. 팀 전력에 빈틈이 생길 때마다 양 날개를 오가며 전천후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발휘한 까닭이다. 특히 1~2라운드에는 본래 포지션인 아포짓 스파이커 대신 윙스파이커 자리에 투입돼 외국인 선수 링컨과 구축한 ‘더블 해머’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대한항공 입단 이후 야간 리시브 훈련까지 자처하며 여러 포지션에서의 출전 기회를 엿봐온 그는 곽승석과 함께 수비 부담을 견뎌내며 정지석이 빠진 팀에 숨통을 틔워줬다.

 

안정감이 부족했던 링컨에게는 임동혁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링컨이 세 차례 무득점 경기를 했던 4라운드에는 임동혁이 외국인 선수 역할 이상의 몫을 해냈다. 해당 세 경기에서 60% 내외의 높은 공격 성공률을 선보이며 거뜬히 두 자릿수 득점을 팀에 안겼다. 시즌 종반 발뒤꿈치 부상을 입은 링컨을 대신해 정규리그 1위 확정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링컨이 따낸 챔피언결정전 MVP 타이틀의 가장 큰 조력자다.

 

“사람들에게 임동혁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다”고 씩씩하게 말하던 그는 이제 코트 위에서의 영리한 플레이와 자신감 넘치는 행동만으로도 제법 듬직한 아우라를 풍기는 존재가 됐다.

팀의 ‘현재’가 된 현대캐피탈 허수봉
모든 공격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허수봉은 2021-2022시즌을 통해 득점력의 절정을 선보였다. 리그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개인 한 경기 최다 35점을 폭발시키며 힘찬 출발을 알렸고 36회 전 경기에 출전하면서 30차례의 두 자릿수 득점 경기를 만들어 커리어 하이를 작성했다. 홀로 10점대 득점 19회, 20점대 득점 9회, 30점대 득점 2회로 철저히 제1의 득점원 역할을 한 그가 리그 국내 선수 득점 1위(602점)를 비롯해 각종 공격 지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현대캐피탈에게 허수봉은 가장 단단한 기둥이었다. 지난해 12월 말 군 복무를 마친 전광인의 합류가 전력의 큰 플러스 요인이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외국인 선수 관리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즌 전후로 두 차례 교체 과정을 거쳤으나 마지막 외국인 선수였던 펠리페 역시 부상으로 제 몫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그 가운데 주전 자리를 꿰차며 리빌딩의 싹을 틔우고 나온 것이 허수봉이다.

 

허수봉은 최근 7시즌 연속 현대캐피탈을 지휘한 최태웅 감독이 가장 공들여 키운 자원이다. 2016년 1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은 허수봉을 즉시 전력 센터인 진성태를 내주고 데려온 만큼 매 시즌 출전 비중을 늘려가며 경험치를 부여했다. 특히 상무에서 체격을 키워 돌아온 허수봉은 특유의 높은 타점과 스피드에 파워를 더했고 여기에 고른 코스 선택과 상대 블로킹을 이용하는 노련미까지 추가해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렸다.

 

어느덧 전력의 중심에 선 허수봉이 전광인, 최민호 등과 함께 팀의 현재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현대캐피탈에 세대교체의 목표는 더 이상 아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 됐다.

자신감이 되어줄 밑그림
한국전력 임성진

임성진은 자신의 V리그 두 번째 시즌을 누구보다도 알차게 채웠다. 우선 자신의 모든 최고 기록을 새롭게 다시 썼다. 처음으로 세자릿수 득점(168점)을 올리면서 시즌 공격 성공률(43.73%)뿐 아니라 서브(세트 평균 0.108), 블로킹(세트 평균 0.161), 디그(세트 평균 1.548)까지 모든 부문의 성적이 데뷔시즌과 비교해 월등히 향상됐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윙 스파이커로서 핵심 과제인 리시브에서도 26.32%의 효율로 나쁘지 않았다.

 

한국전력 장병철 전 감독은 언론과 만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임성진의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 한편으로는 임성진을 향한 강한 기대감을 내비치면서 다소 내성적인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독려의 메시지를 꼭 함께 전했다. 실제 4라운드 전 경기에는 임성진을 스타팅 멤버로 기용하며 분명한 믿음을 실어줬고, 임성진 역시 3월 초 발목 부상으로 잠시 이탈한 서재덕의 자리를 채워 개인 한 경기 최다 14득점 활약을 펼치는 등 막바지 순위 경쟁에 힘을 보탰다. 장 감독도 임성진을 콕 집어 “제 역할을 잘 해줬다”며 칭찬을 잊지 않았다.

 

배구 외적으로도 팬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목을 끌었다. 워낙 부끄러움이 많은 탓에 평소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으로 익히 알려져 있으나 팬들이 지어준 애칭 ‘수원 왕자’를 달고 참여한 생애 첫 올스타전에서 미국 춤을 선보이는 등 화끈한 팬서비스를 선물했다. 이를 바탕으로 MVP 수상의 영예를 안은 그는 차세대 스타로서의 가능성과 함께 코트 위에서도 힘을 빼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유의 힘을 체감했다.

꼭 맞는 옷을 입은 KGC인삼공사 정호영
정호영은 미들블로커로서 본격적인 첫 발을 뗐다. 이영택 전 감독의 제안으로 마주한 포지션 변경이라는 터닝포인트는 결국 그의 선수 인생에서 결정적인 선택이 됐다. 28경기 152득점을 따내며 리그 속공 4위(성공률 46.15%)에 이름을 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특히 190cm의 압도적 높이를 유감없이 앞세울 수 있는 중앙에서 상대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271개의 팀 블로킹 중 17%에 해당하는 47개 블로킹이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먼길을 돌아왔다. 선명여고 시절부터 한국 여자배구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날개 공격수로 기대를 모았던 그는 2019년 신인드래프트 최대어로 손꼽히며 화제의 중심에 선 주인공이다. 하지만 데뷔 첫해 리시브를 비롯한 수비적 측면에서의 약점으로 제 자리를 찾지 못했고, 나란히 1라운드 상위권에 지명을 받았던 이다현(현대건설), 권민지(GS칼텍스)와 비교해서도 활약상이 부족했다. 포지션 변경 첫해인 2020-2021시즌에도 개막전서 십자인대 부상을 입고 해당 시즌 전체를 날려 준비한 것을 미처 선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정호영의 남다른 폭발력은 그간의 아쉬움을 모두 털어내기에 충분했다. 비록 주전 풀타임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적재적소에 투입돼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까닭이다. 특히 세트당 평균 1개 이상의 블로킹을 터트린 경기는 8차례에 이른다. 리그 조기 종료로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된 3월 20일 IBK 기업은행전에서는 개인 한 경기 최다 7개 블로킹을 포함해 역시 최다 기록인 15득점을 몰아치며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핑크 폭격기
흥국생명 정윤주

흥국생명이 2라운드 3순위로 품에 안은 정윤주는 ‘신인답지 않은 신인’으로 손꼽혔다. 윙스파이커로서 신장은 176cm로 작은 편이지만, 특유의 탄력과 점프력으로 당찬 플레이를 선보여서다. 특히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에 따라 직선, 대각선 코스를 적절히 선택하고 공격의 강도를 조절하는 유연함이 돋보였다. 스피드와 과감한 팔 스윙 역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각인돼 있다.

 

정윤주는 흥국생명이 단행한 급진적인 세대교체의 키플레이어였다. 2라운드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출전 기회를 늘려나가기 시작한 그는 곧장 개인 한 경기 최다 20득점으로 팀의 6연패를 끊어내는 등 새로운 해결사로 발돋움했다. 팀의 삼각편대 중 한 자리를 따낸 정윤주는 신인 중 최고 기록인 시즌 203득점으로 단연 독보적인 행보를 펼쳤다. 리그 6위로 밀려난 흥국생명의 가장 큰 수확이다.

 

다가올 시즌에는 교체된 사령탑과 이뤄낼 시너지에 주목할 만하다. 흥국생명과 새롭게 출발하는 권순찬 감독은 과거 남자부 KB손해보험을 이끌 당시에도 선수들의 이름값이나 외적인 조건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김정호와 같이 영민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자원들을 전면에 내세워 팀의 색깔을 바꿔낸 바 있다. 정윤주는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수비에서 80.40%의 높은 디그 성공률(세트당 2개)을 기록했으나 서브 리시브(효율 14.36%)에선 보완점을 확인했다. 철저한 분석과 견제가 더해질 2년 차 시즌에 앞서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는 것이 관건이다.

 

글. 서다영 객원기자 

사진. 더스파이크DB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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