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연맹(KOVO)은 2023년 처음으로 아시아쿼터 제도를 도입했고, 2024년에는 그 대상국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했다. 이에 특수 외국어를 구사하는 선수들이 V-리그에 입성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언어, 나아가 문화를 전달하는 통역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정관장 이소정 통역과 우리카드 배준우 통역도 각각 특수 외국어인 인도네시아어, 페르시아어로 외국인 선수들을 돕고 있다.
인도네시아어와 영어까지
정관장 이소정 통역 “우리 3명은 파워 E입니다!”
정관장에는 세르비아 출신의 외국인 선수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시아쿼터 선수인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와 2024-25시즌을 맞이했다. 메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정관장과의 동행을 이어갔다. 영어, 인도네시아어까지 가능한 통역을 채용했고, 올해는 이소정 통역과 손을 잡았다.
이소정 통역은 2살이 되던 해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이민을 갔고, 작년 10월 한국에 돌아왔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머문 시간이 더 길었다. 그만큼 메가의 마음을 가장 이해할 수 있었다. 부키리치는 영어를 사용한다. 이소정 통역은 “우리 3명은 파워 E다”고 말하며 그 케미스트리를 자랑했다.
어떻게 ‘특수 외국어’인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게 됐나.
두 살 때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이민자였다. 가족들이랑 함께 가서 난 그 곳에서 한국 국제학교를 다녔다. 엄마가 한국 국제학교 선생님이었다. 한국말도 잊지 않고 하게 됐다. 또 인도네시아어는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 같다. 물론 과목에 인도네시아어가 있어서 이론적으로 문법을 터득하긴 했다.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나.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나처럼 이민을 가신 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영어 과목만 3, 4개 정도로 나눠서 배웠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중에 가장 편한 언어는.
비슷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인도네시아어랑 한국어랑 가장 비슷한 것 같다. 굳이 따진다면 영어가 3순위인 것 같다(웃음).
어떻게 배구단 통역 일을 맡게 됐나.
한국으로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떤 일을 할지 고민을 했다. 인도네시아어가 특수 언어라 이를 살려보려고 통역 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스포츠 통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마침 정관장 팀의 공고를 지원을 하게 됐다. 내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부모님은 먼저 들어오셨고, 내가 제일 마지막까지 인도네시아에 있다가 오게 됐다. 알고 보니 엄마가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스포츠 통역이라고 했다. 공고가 떴다고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적극적으로 추천을 해주셔서 나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엄마가 체육 선생님이셨는데 예전에 9인제 배구였을 때도 심판 자격증을 따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모든 스포츠를 보신다. 요즘에는 나로 인해 배구도 다시 공부하고 계신다.
8월부터 배구팀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통역 업무를 맡았는데, 스포츠 통역 일은 어떤 것 같나.
감정과 말을 전달하는 일이다. 외국 선수들이 한국말을 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그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을 했다. 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TV로만 보던 선수들의 모습을 옆에서 보니 존경스러웠다. 팀을 이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구나를 느꼈다.
배구 용어나 전술 등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할 때 어려움도 있었을텐데.
처음에는 어려웠다. 아무리 유튜브나 책을 다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고, 어떤 사이트에서 나라별로 배구 용어가 정리돼있는 것을 보고 공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실전에 쓰는 단어는 또 다르더라. 오히려 이 부분들은 선수들에게 물어봤다. 이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체크했다. 그 친구들이 쓰던 단어로 말해야 빨리 알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2명의 선수에게 다른 언어로 동시에 전달을 해야 하는데.
분명 쉽지는 않다. 그래도 다행히 메가는 작년 시즌부터 이 팀에서 뛰었고, 한국말도 많이 늘었다. 눈치로 알아듣는 편이다.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일단 두 선수에게 영어로 먼저 통역을 하고, 메가가 못 알아듣는 부분은 인도네시아어로 보태서 설명을 한다.
이소정 통역과 메가, 부키리치의 결이 잘 맞는 듯 보인다.
일단 우리가 다 파워 E다. 외향적이다. 서로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다만 두 선수들은 1999년생으로 동갑이라서 친구처럼 결이 맞는 부분도 있다. 굉장히 밝고 장난꾸러기다. 난 1992년생이라 언니다보니 나이 차이가 있다. 이 선수들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두 아이의 언니 혹은 엄마처럼 챙겨주려고 하다보니 셋이 합이 잘 맞는 것 같다(웃음). 또 선수들이 기분이 좋거나 행복해할 때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이 더 길었던 만큼 메가와 서로 이해가 잘 됐을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내고 왔다. 메가와 비슷한 시선이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놀라운 것이 더 많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당연히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로 건너야 하지 않나.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또 인도네시아 화장실에는 호스로 물을 뿌리곤 한다. 한국에서는 비데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메가랑 얘기하면서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게 편했지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 메가가 나보고 한국 사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람이라고 한다(웃음).
특수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V-리그가 또 다른 기회로 보인다.
아무래도 특수 언어인 만큼 수요와 공급이 없었다.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배구 아시아쿼터가 생기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이 시장이 활성화되면 우리도 할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로서는 좋은 현상이다.
통역 일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준다면.
언어적으로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현지에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긍정적이어야 한다. 나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또 스포츠 통역의 경우 외국인 선수들의 매니저 겸 가족 그리고 친구도 돼줘야 한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부분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결국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페르시아어 전공한 배준우 통역이 전하는 메시지
“특수 외국어요? 확신을 갖고 더 공부해도 됩니다!”
올해 V-리그에서는 남자부에서만 이란 국적의 선수 3명이 프로팀 지명을 받았다. 우리카드의 알리 하그파라스트(등록명 알리), 삼성화재의 알리 파즐리(등록명 파즐리), 대한항공의 모라디 아레프(등록명 아레프)가 그 주인공이다(아레프는 시즌 도중 교체됐다). 파즐리의 경우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 알리와 아레프는 페르시아어 통역을 통해 보다 수월하게 소통을 하고 있다. 알리의 통역 일을 맡은 배준우 통역도 올해 처음으로 배구팀에 합류했다. 특수 외국어 통역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알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페르시아어 전공을 했다고 들었다. 그 계기가 있나.
원래 스포츠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애초에 페르시아어를 공부했던 이유는 이란에 운동을 잘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해외로 진출을 못하는 선수들을 종종 봤다. 선수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란의 그러한 선수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어는 언제부터 공부를 했나.
2018년도부터 대학교에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진 않았다. 군대 전역하고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란으로 한 한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그렇게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원래 배구에는 관심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란 선수들이 배구를 잘한다고 들었다. 교환학생으로 갔던 곳인 테헤란에도 배구 구장이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배구 쪽에서도 기회가 올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7월부터 팀에 합류해 통역 일을 맡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알리는 어린 선수다. 이제 해외 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내가 첫 발걸음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더 만족스럽다. 반대로 이 때문에 5개월 동안 많은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당연히 경기는 선수가 뛰는 것이지만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더 잘 될 수 있는 선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 않나. 항상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
알리와 브라질 출신의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은 어떻게 소통을 하나.
영어 통역이 따로 있어서 그 분을 통해 한국말을 듣고, 알리한테 페르시아어로 전달을 한다. 나만 있는 상황이면 내가 영어로 듣고 알리한테 통역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알리는 대부분 페르시아어로 말한다.
알리에게 말을 전달하고, 반대로 알리의 말을 전달하면서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전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직역을 해야할 때, 의역을 해야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예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가 덤벨을 들고 하는 동작을 설명을 해야했다.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는 동작이었다. 덤벨을 던지듯이 해야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감독님이 알리한테 던지라고 말하셨다. 이를 직역을 했더니 알리가 갸우뚱하다가 발 밑으로 덤벨을 내려놓더라. 나중에 무슨 뜻인지 알고 다 웃으며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에 아찔했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게 기회를 한 번 더 받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배구 용어나 전술 등 전문적인 내용은 어떻게 전달하려고 했나.
처음에는 어려웠다. 물론 팀에 들어오기 전에 페르시아어로 배구 용어를 공부하고 왔지만 다른 용어도 많았다. 오히려 알리가 도움을 많이 줬다. 알리가 잘 안 맞는 것 같다면서 리스트를 정리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용어가 일치되지 않을 때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넌 이를 뭐라고 해 하면서 보여주면서 정리가 됐다. 권오현 통역이 팁을 줘서 배웠다.
옆에서 본 알리는 어떤 선수인가.
재능 덩어리다. 비유를 하자면 ‘아이언맨’이 가슴에 붙인 아크원자 같은 느낌이다. 힘도 좋고 다재다능한 선수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주변에서도 더 도와주고, 본인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한다면 나중에 더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 넘치는 에너지로 날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웃음). 한국어로 날 놀리기도 한다. 가끔은 한국어로 ‘준우 집에 가’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똑똑한 친구다. 배구를 할 때도 팀에서 가장 배구를 모르는 내가 봤을 때는 더 생각하면서 배구를 하려고 한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빠르다. 한국어, 영어가 엄청 늘었다.
새 외국인 선수 니콜리치와 알리의 케미스트리도 좋아보이는데.
서로 영어나 바디랭귀지를 쓰기도 하고, 내가 대신 통역을 해주기도 한다. 서로 개구쟁이다. 니콜리치는 비슷하면서도 깊은 면이 있다. 알리 장난도 잘 받아준다. 서로 같이 다가가려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또 알리가 축구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볼링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직 난 알리를 이겨본 적이 없다(웃음).
특수 외국어를 쓰는 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제2외국어에서 일본어, 중국어가 아닌 특수 외국어를 하는 분들은 이를 공부했을 때 쓸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다. 학교에서도 그러한 분들을 봤다. 특히 페르시아어는 외대에만 학과가 하나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도 아시아쿼터 덕분에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특수 외국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올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후배들도 의심하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이소정 통역, 배준우 통역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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