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경기대 최원빈이 그랬다. 3학년에 올라가 처음으로 맞은 주전 세터 역할을 120% 해냈다. 10년 만에 U-리그 우승을 만든 최원빈의 손엔 MVP 트로피가 있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최원빈을 만나기 위해 12월임에도 따뜻했던 어느 날, 경기대 체육관으로 향했다.
#우승 #세터상 #MVP
경기대는 2023 KUSF 대학배구 U-리그에서 정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다사다난했다. 에이스의 부상부터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 직전까지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지만, 그 순간들을 모두 이겨냈고 10년 만에 U-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최원빈에게 돌아갔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주전 세터로 뛰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인터뷰를 한 시점에 우승을 맛본 지 두 달이나 흘렀지만, 여운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최원빈은 “우승은 항상 똑같이 너무 좋다. 대학 무대에서 가장 큰 대회라고 할 수 있는 U-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초반에 잘 나가다가 힘든 과정도 이겨내면서 우리끼리 이겨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더 값지고 의미 있는 우승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승을 맞이한 여정을 함께 돌아봤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본인부터 팀의 색깔을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최원빈은 “이상렬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빠른 배구를 하려고 노력했다. 중앙을 많이 활용하려고 했는데, 시즌 초반에는 호흡이 불안해서 실수할까 봐 잘 쓰지 못했다. 그래도 경기하면 할수록 자신감도 올라오고 점차 잘 맞아가면서 더 빠르게 경기 운영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 팀만의 색깔을 꾸리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경기대는 U-리그 전반기 순항을 이어가다 후반기에 위기를 겪었다. 여름방학 때 에이스로 활약하던 이윤수(삼성화재)가 발목 부상을 입으면서 남은 경기에 모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더불어 예선 마지막 경기인 경희대를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1, 2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최원빈은 “플레이오프에 꼭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우리 발목을 잡은 것 같다. 1, 2세트를 내준 뒤에 우리끼리 합쳐서 이긴 게 상승세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경희대를 상대로 5세트 접전 끝에 어렵게 올라간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인하대였다. 2022년 4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셧아웃으로 패했고, 올해 이뤄진 맞대결에서 제천대회 예선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졌다. 특히 제천대회 결승에서는 인하대를 상대로 먼저 매치포인트를 따냈음에도 점수를 내주며 준우승에 그쳤다.
우승을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었다. “인하대를 만나면 주눅이 들었던 게 있었지만, 더 이겨내려고 애썼다. 제천대회 때 우승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깐 U-리그에서 만났을 때 다 비우고 했다. 목표인 4강에 올라온 만큼 할 수 있는 걸 다 하자는 생각으로 한 덕분에 우리 모두의 기량을 다 뽐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승에선 명지대를 만나 셧아웃으로 이기며 U-리그 정상에 올랐다. 주전 세터로의 부담감과 에이스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생각이 최원빈부터 경기대 전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로 더 많이 뭉쳐졌던 것 같다. 윤수가 다친 게 한편으로는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또 윤수 없이도 우리가 된다는 걸 보여주자는 의지까지, 두 개가 조화롭게 작용이 된 덕분에 좋은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배구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됐다.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앞으로 배구하는 날에 이렇게 어렵게 올라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의 터닝포인트
#원포인트 서버 #대표팀
1, 2학년 때는 같은 포지션에 자리하고 있는 선배들에 밀려 세터로 출전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마다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가면서 여러 상황을 많이 맞이했다.
최원빈은 “1, 2학년 때 경험들이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세터로 경기를 뛰게 되면 더 많이 때리게 되는데, 듀스나 중요한 순간에 서브 차례가 와도 많이 겪었기에 더 자신 있게 때릴 수 있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대학 진학 후 처음으로 세터로 뛴 경기에서 수훈선수 활약을 펼쳤다. 2022 대한항공배 전국대학배구 무안대회 한양대와 마지막 예선 경기. 2세트 교체로 들어가 처음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5세트엔 서브로 연속 득점을 가져오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경기였다. 그 해 경기 때마다 서브에 자신도 없고, 세터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그때 들어가서 세트를 가져오고, 5세트 때는 내 서브로 경기를 가져오니깐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사람으로, 선수로 자신감이 없다고 주눅 들면 안 되고 더 열심히 해서 이겨내고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도 덧붙였다.
2023년에는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도 얻었다. 8월 문경에서 열린 8개국 초청 국제 대학배구 대회에 발탁됐고, 이 대회에서도 우승과 함께 MVP를 수상했다. “오랜만에 형들이랑 호흡을 맞춰서 토스하는 게 떨렸다. 또 해외 선수들 피지컬이 좋아서 대학에서는 상대하지 못한 높이라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래도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에 내가 일원이 됐다는 것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한 해 중에 가장 많이 기량이 늘었던 시기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따라 배구공을 잡고
세터로 성장하다
최원빈은 자연스럽게 배구공을 잡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과거 국가대표 세터 출신이자, KB손해보험 사무국장을 맡았던 최영준 씨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것에 후회는 없다고 털어놨다.
“내가 하고 싶었다. 솔직히 아빠는 다른 운동을 시키려고 하셨다(웃음). 어릴 때부터 배구장을 많이 갔기에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때 감독님이 원래 다니던 학교에 스카우트하러 오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배구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많이 궁금했다. 그때 한창 나도 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고 계기를 전했다.
배구 선수 출신의 아버지에게 많은 도움을 많이 얻고 있다. “경기 끝나고 항상 피드백을 해주신다.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부터, 상황에 따라 어떻게 생각하면 되는지도 말씀해 주신다. 최근에는 ‘코트 안에서 떨지 말고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나와라’고 경기 전에 항상 말해 주신다. 이 말이 긴장도 풀리고 자신감도 생겨서 도움이 된다”고 고마움을 건넸다.
세터로 다소 낮은 신장을 가지고 있다. 본인 역시 “중, 고등학교 때 키가 작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 한창 장신 세터가 트렌드였기에 일본 배구를 보기 시작했다. 높이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점프 훈련도 많이 했다. 토스는 당연히 잘해야 했고, 외적인 수비부터 서브를 보완하려고 했다. 나만의 무기를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떻게 이를 극복하려고 했는지도 설명했다.
현재 일본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전 세터인 175cm의 세키타 마사히로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VNL에서 일본을 3위로 이끌면서 증명해 줬다. 덕분에 나보다 작은 선수가 이룬 만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 토스가 워낙 빠르고, 세키타 플레이를 보면 ‘세터 때문에 졌다’는 말을 안 들을 것 같은 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많이 본받고 싶다”고 설명했다.
“무결점, 개성 넘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일찍 도전하려고 했으나, 남은 1년을 학교에서 보내기로 했다. 최원빈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뒤이어 “올해 프로에 간 삼성화재 (이)재현이나, OK금융그룹 (박)태성이 형은 1학년 때부터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런데 아직 나는 확실하게 보여준 게 올해 한 해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년만 빛났던 선수가 아닌 꾸준히 빛날 수 있는 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대학교에서 남은 1년 동안 더 갈고 닦을 예정이다. “우승을 다시 한번 해내고 싶다. 경기대가 팀적으로 강해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경기 운영부터 서브까지 범실을 줄이고, 블로킹을 많이 잡아보고 싶다고 목표를 잡았다. 서브와 블로킹 부문에서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목표를 전했다.
세터로의 목표도 들려줬다. “무결점 세터가 되고 싶다. 어떤 부분에 약점이 있는 선수가 아닌, 쉽게 분석할 수 없는 세터가 되고 싶다”고 전하면서 “개성이 강한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 흔히 세터들은 코트 안에서 냉정해야 하고 차분해야 한다는 시선이 있다. 근데 나는 코트에서 신나야 더 잘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만의 스타일로 실수하더라도 하고 싶은 걸 자신 있게 하고 싶다. 코트 안에서 나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글. 김하림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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