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우의 정신없는 1년차 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마음가짐만큼은 이미 10년차 급이다.
대한항공은 2024-2025 V-리그 남자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드래프트 전까지 꾸준히 트레이드를 통해 구슬을 모으며 특급 신인들을 노렸던 대한항공이기에, 1순위 지명권을 누구에게 행사할지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1순위 지명권 행사를 위해 단상으로 올라가 망설임 없이 천안고등학교 세터 김관우의 이름을 불렀다. V-리그 최초의 고졸 1라운드 1순위 선수가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대한항공에 입성한 김관우의 1년차 시즌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팀이 계속해서 상위권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 탓에 출전 기회가 많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끝없이 해나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시즌 막바지에는 기회를 받아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최근 <더스파이크>와 용인에 위치한 대한항공 훈련장에서 만난 김관우는 “고3 상반기부터 계속 쉴 틈 없이 배구를 해왔다. 그래서 약간의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한항공에 와서 웨이트도 열심히 하고 훈련도 잘 참여하다보니 몸이 오히려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 다만 팀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렸던 게 아쉽다. 더 빨리 팀에 녹아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며 1년차 시즌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소개했다.
이후 김관우와 V-리그에서의 잊지 못할 순간들을 돌아봤다. 그는 먼저 드래프트장에서 첫 번째로 이름이 불리던 순간을 돌아봤다. 김관우는 “첫 번째로 호명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그 팀이 대한항공일 거라는 것 역시 전혀 생각 못했다. 기분이 좋은 것보다도 긴장감이 훨씬 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긴장감이 가득했던 날을 회상했다.
두 번째 순간은 고대해왔던 V-리그 데뷔의 순간이었다. 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치러진 3라운드 현대캐피탈전에서 원 포인트 서버로 코트를 밟으며 위대한 첫 걸음을 뗐다. 김관우는 “원 포인트 서버로 들어갔는데, 긴장을 안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처음으로 팬 여러분들 앞에서 공을 만지고 코트에 들어가는 게 많이 떨렸다. 처음이다 보니 적응을 잘 못한 것 같아 아쉽다”며 완벽하지는 않았던 자신의 시작을 되짚었다.
세 번째 순간은 세터 김관우의 첫 번째 세트 성공이 기록됐던 6라운드 삼성화재전이었다. 세터가 아닌 원 포인트 블로커로 들어가서 성공한 세트였기에 오히려 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을 순간이었다. 김관우는 “블로커로 들어가게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연습 때도 코트 위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데 들어가서 세트 성공까지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처음으로 만족스럽게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마침 부모님이 처음으로 경기를 보러 와주신 날이었다. 부모님의 힘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터로서의 좋은 시작이 됐다”며 부모님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순간은 6라운드 OK저축은행전이었다. 이날 김관우는 V-리그에서의 첫 번째 세트 선발 출전 기록을 남겼고, 첫 득점도 올렸다. 그러나 그는 “팀이 두 세트를 진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기회를 얻게 됐다. 선발로 들어가게 됐을 때 ‘이번에는 위축되지 말고 재밌게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막내답게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들어가서 정말 열심히 뛰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한 것 같다. 형들과의 호흡을 맞춰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많이 맞춰본 (임)재영이 형과 합을 최대한 맞춰보려고 했다. 3세트에는 운이 좋았다. 4세트에는 호흡도 안 맞았고, 나도 긴장하는 바람에 만족스럽지 못한 플레이들이 나왔다”며 조금은 냉정하게 경기를 복기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돌아본 뒤, 김관우와 대한항공 사람들에 대한 대화도 나눠봤다. 먼저 동 포지션의 위대한 선배들인 한선수와 유광우에 대해 김관우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V-리그를 지배해왔던 형들이다. 형들의 실력과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두 형 중 한 명은 웜업존에 계시기 때문에, 그럴 때 웜업존에 계시는 형에게는 항상 많은 걸 물어보고 배운다. 형들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며 두 선배를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김관우의 드래프트 동기이자 동 포지션 경쟁자인 최원빈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김관우는 “사교성과 친화력이 정말 좋은 형이다. (최)원빈이 형이 나도 엄청 잘 챙겨줬다. 믿음직한 사람이다. 세터로서는 발이 정말 빠르고 수비 능력이 뛰어난 세터다. 볼 스피드도 좋다. 내가 약점인 부분들이 형에게는 장점이라서, 보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며 최원빈과의 코트 안팎 공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관우의 프로 무대 첫 스승님인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그는 “배구에 정말 진심인 분이다. 선수들을 결과론적으로 기용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연습 때 정말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나도 연습 때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정말 친구같이 선수들을 대해주시고 운동 분위기를 재밌게 해주는 분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든 것들을 다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라며 틸리카이넨 감독을 소개했다.
프로 무대에서의 첫 시즌에 적응하기도 바쁠 텐데, 김관우는 그 속에서 나름의 또 다른 노력도 시작했다. 바로 영어 공부다. 그는 “프로는 훈련 시간과 개인 시간이 철저히 분리돼 있다. 그래서 훈련 시간 빼고는 모든 게 다 자유롭다. 이 시간에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해봤는데, 외국인 감독님과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나를 발전시킬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졸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성숙한 태도였다.
김관우의 성숙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이야기는 영 플레이어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시즌에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수상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영 플레이어 상의 후보군이 1~3년차기 때문에 다음 시즌이나 그 다음 시즌에는 김관우도 영 플레이어 상을 충분히 노릴만 하다. 그러나 그는 “상에 대한 욕심은 솔직히 별로 없다. 그냥 내가 잘하면 상은 알아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상을 바라고 뛰는 건 선수답지 않은 태도다. 늘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트로피는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끝으로 김관우는 “팬 여러분들이 늘 저에게 보내주시는 응원과 기대의 한 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된다. 팬 여러분들이 있기에 선수들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 최선을 다하고, 더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관우가 왜 1라운드 1순위가 됐는지, 또 왜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인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인터뷰였다.
사진_용인/김희수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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