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김연경

이보미 / 기사승인 : 2025-04-08 1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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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언니를 따라 배구 코트를 밟았던 키 작은 꼬마는 한국 배구의 새 역사를 썼다. 한국을 넘어 일본, 튀르키예까지 진출해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아시아 배구선수가 유럽에서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태극마크를 달고도 두 차례 올림픽 4강 진출을 이끌었고, 올림픽 MVP까지 거머쥐었다. 2024-25시즌까지도 한국 V-리그에서 외인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25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마지막 봄배구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이제 선수 김연경과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할 시간이다. 살아있는 레전드, 월드 클래스, 배구황제 김연경의 시간을 돌아봤다.

ONE&ONLY
LIVING LEGEND


“처음 포지션은 세터였어요. 중학교 1학년 때도 세터를 했었는데 키가 작아서 경기는 잘 못 뛰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리시브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제가 뛰게 됐죠. 그렇게 1학년 말쯤 자리를 잡고 지내다 보니, 키가 자라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15-20㎝가 크더라고요."
-<더스파이크> 2016년 1월호 인터뷰 中


김연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키가 큰 선수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세터 포지션을 맡았다. 수비 능력도 키워야 했다. 그러다 리시브를 전담하는 아포짓으로 뛰기도 했고, 아웃사이드 히터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렇게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 고교 진학 이후에는 급격한 성장 덕분에 기본기가 좋은 장신 공격수가 됐다. 안산서초-원곡중-수원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를 거쳐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지명을 받았다. 그 당시 김연경은 186cm 아웃사이드 히터로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됐다. 그만큼 차세대 거포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04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에 발탁돼 제12회 아시아청소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출격했다. U19 대표팀에 뽑힌 김연경은 이 대회에서 최고 득점자로 존재감을 알렸다. 제9회 세계유스선수권대회까지 출격했다. 그러면서 김연경을 향해 시선이 집중됐다. ‘대형 유망주’ 김연경은 단번에 ‘배구 스타’가 됐다.

“여러 포지션을 경험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금 리시브하는 것도 그 때 리시브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키가 컸던 애들은 선생님이 리시브를 안 시켜요. 공격하고 블로킹만 해요. 그러다보니 리시브가 약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반쪽 선수가 돼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키가 크면서도 안정적 리시브가 가능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선수가 드물거든요.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죠.”
-<더스파이크> 2016년 1월호 인터뷰 中

김연경은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V-리그에서 4시즌을 보냈다. 프로 데뷔 시즌부터 신인선수상,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석권하며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에는 해외 진출이라는 모험을 택했다. 동시에 김연경의 배구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챕터를 열었다. 김연경은 2009년부터 두 시즌 동안 일본 JT마블러스 유니폼을 입고 팀 우승까지 이끌었다. 2011년에는 유럽 무대까지 밟았다. 2011-12시즌부터 2016-17시즌까지 6시즌 동안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와 동행을 이어갔다. 2017-18시즌 중국 상하이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2018년 다시 튀르키예로 복귀했다. 페네르바체가 아닌 엑자시바시 소속으로 두 시즌 동안 활약했다. 2020년에는 2021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복귀를 알리기도 했다. 11년 만에 흥국생명의 핑크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2021-22시즌 다시 상하이로 떠난 뒤 2022년 흥국생명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김연경은 지난 2월 13일 GS칼텍스전이 끝난 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24-25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미 국가대표 김연경과는 결별한 바 있다. 김연경은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지난해에는 국가대표 출신 선배들과 함께 국가대표 은퇴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김연경의 발자취 역시 화려하다. 2012 런던올림픽부터 2016 리우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까지 3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두 차례 4강 진출이라는 감동을 선사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1976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이후 36년 만의 4강 진출이라는 성적을 냈다. 한국은 4강전에서 미국에 0-3으로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동메달결정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됐다. 브라질에 패한 일본과 동메달을 놓고 한 판 승부를 펼친 것. 한국은 0-3으로 패하면서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올림픽 MVP는 이례적으로 4위 팀인 한국에서 나왔다. 김연경이 대회 최고 득점자이자 MVP라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김연경의 나이 24세였다. 튀르키예에서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런던올림픽이라는 세계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며 ‘별 중의 별’로 등극했다. 런던올림픽에서 김연경이 기록한 207점은 2000년 랠리포인트 시스템 도입 이후 올림픽 최고 득점이다.



“아직까지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언제 우리가 준결승에 한 번 더 나갈 수 있을까, 올림픽에서 그런 기회가 한 번 더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더스파이크> 2016년 1월호 인터뷰 中


다만 이후에도 한국 여자배구의 올림픽 메달은 나오지 않았다. 각 클럽팀에서 모든 상을 휩쓸었던 김연경이었기에 올림픽 메달을 얻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도 ‘이정철호’는 조별예선 A조 3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1-3으로 패하면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중국이 ‘스타’ 주팅을 앞세워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김연경에 이어 2016년 올림픽 MVP 역시 아시아 공격수 주팅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4강 신화를 썼다. 2019년 대한배구협회는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사령탑인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2020년 한국 여자배구는 큰 위기에 닥쳤다. 주축 선수들이 이탈하면서 대표팀 선수 구성부터 변화가 컸다. 이 와중에 태국이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을 노리며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버텨야 했던 한국이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예선에서 한국이 태국을 꺾고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역시 김연경이 있었다. ‘캡틴’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팀을 이끌었다.

도쿄올림픽 본선 무대에 오른 한국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예선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팀워크가 빛났다. 조별예선 A조 3차전인 도미니카공화국전 3-2 승리를 발판으로 팀 사기가 올랐다. 자신감이 오른 한국은 일본전에서도 5세트를 16-14로 극적으로 마치며 포효했다. 8강행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강전에서 만난 튀르키예와 풀세트 접전 끝에 제압했다. 2012년 이후 다시 올림픽 4강 무대를 밟게 됐다. 하지만 브라질의 벽은 높았다. 세르비아와 동메달결정전에서도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김연경은 136점을 올리며 득점 2위를 차지했다. 세르비아 티야나 보스코비치(192점) 다음으로 높았다. 세르비아전이 국가대표 김연경의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 이후 취재진 앞에 선 김연경의 눈물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김연경의 종횡무진 활약에 세계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명한 해외 지도자들이 김연경을 높게 평가했고, 김연경을 ‘롤모델’로 삼고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의 다츠가와 미노루 감독은 “김연경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다”라고 했고, 페네르바체 이적 당시 김연경을 영입한 브라질 출신의 제 호베르투 감독은 “그녀는 모두와 잘 어울리고 그녀를 좋아한다”며 타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연경의 호탕한 성격을 치켜세웠다. 2014년 당시 독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지오반니 구이데티 감독은 “큰 신장에 점프력, 시야, 체력, 센스까지 갖췄다. 김연경을 보유한 한국대표팀이 부럽다. 세계 어디에도 김연경과 같은 선수를 찾기 어렵다. 다재다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축구로 비유하면 리오넬 메시다”고 했고, 이후에도 “김연경은 아포짓처럼 득점을 올리고 리베로처럼 리시브를 한다. 기계처럼 서브를 하고 미들블로커처럼 블로킹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팀원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김연경에 이어 튀르키예, 이탈리아에서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맹활약 중인 주팅 역시 김연경을 우상으로 여긴 선수 중 한 명이다. 현재 흥국생명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튀르키예 출신의 아포짓 투트쿠 부르주(등록명 투트쿠)는 어렸을 때부터 튀르키예에서 뛰던 김연경을 보고 자란 선수다. 그만큼 김연경의 영향력은 컸다.



WORLD CLASS

“외국인 선수들과 같이 뛰는데 한번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해외에 나가서 뛰지 못할까.’ 그리고 국가대표로 해외에 한 번씩 가게 되면 다들 자기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서로 친하더라고요. 그 때 우리 한국선수들만 아무도 모르고 구석에 있는 느낌을 받았죠. 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해외에 못 나갈까 생각하다 보니까 그 때부터 해외리그에 조금씩 관심이 생겼어요. 나도 좋은 리그에서 좋은 선수들과 뛰고 싶다는 꿈을 꿨죠.”
-<더스파이크> 2016년 1월호 인터뷰 中


김연경이 해외 진출을 택한 이유다. 누구도 쉽게 내리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 처음으로 그가 떠난 곳은 일본이었다.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외국인 선수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김연경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이후 선수들의 인정을 받으며 ‘원 팀’이 됐다. 김연경도 스스로 노력했다. 일본에서는 개인 훈련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 만큼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자 했다. 일본에서의 첫 시즌에 팀은 리그 준우승에 그쳤지만, 김연경은 당당히 득점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행착오를 겪은 김연경은 마침내 2010-11시즌 우승과 함께 MVP까지 거머쥐었다.

다음으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유럽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오퍼를 받았지만, 튀르키예를 택했다. 호베르투 감독이 이끄는 페네르바체와 손을 잡았다. 역시 낯선 타국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첫 시즌에는 동료들이 공을 올려주지도 않았다. 김연경은 다시 페네르바체에 영입된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페네르바체로 이적하자마자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MVP까지 수상하며 김연경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그렇게 힘든 순간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김연경이 해외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튀르키예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마친 김연경은 계속해서 페네르바체와 동행했다. 6시즌 동안 함께 했다. 튀르키예에서도 ‘Kim’을 알아볼 정도로 배구 스타로 유명해졌다.

2016-17시즌에는 변화를 꾀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새 출발을 알렸다. 튀르키예 리그에서의 연봉과 비슷한 수준으로 1년 계약을 맺었다. 리그 기간이 짧은 것도 매력적이었다. 상하이와 계약 만료 뒤에는 고민 끝에 다시 튀르키예로 향했다. 페네르바체가 아닌 엑자시바시였다. 페네르바체의 팬들로부터 야유를 들어야 했던 두 시즌이었지만 2018-19시즌 튀르키예 리그 준우승, 2019-20시즌 세계클럽선수권 준우승을 일궜다.

이후 11년 만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흥국생명에서 한 시즌을 뛴 뒤에는 다시 중국 상하이로 향했다. 김연경이 해외에서 뛴 마지막 시즌이었다. 오랜 해외 생활 중 다수의 해외리그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김연경이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 리그의 오퍼를 받고 뛸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 은퇴를 앞둔 김연경에게 아쉬웠던 순간이다. 그럼에도 일본, 튀르키예, 중국리그를 거치면서 ‘월드 클래스’ 김연경을 보여줬다. 특히 튀르키예에서는 CEV 대회에 출격해 더 다양한 팀들과 격돌하며 꾸준히 경험을 쌓았다. 이 덕분에 지금의 김연경이 있었다.

‘배구황제’ 김연경이 남긴 발자취


흥국생명과 LAST DANCE
김연경과 흥국생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프로 선수의 시작과 끝을 모두 흥국생명에서 함께 하게 됐다. 동시에 김연경이 핑크 유니폼을 입는 시즌에는 모두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2005시즌 5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합류한 2005-06시즌부터 4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행 티켓을 획득했다. 2년 연속 우승, 2008년 준우승 이후 2009년 다시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올랐다. ‘대형 유망주’ 김연경과 함께 3개의 별을 유니폼에 새긴 셈이다. 이후에도 김연경이 국내에 복귀한 2020년, 다시 돌아온 2022-23시즌부터 2024-25시즌까지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오른다. 흥국생명은 2018-19시즌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 이후 6년 만의 정상 탈환에 도전한다. 그렇게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유일하게 뛴 국내팀이 됐다.

등장부터 화려했다. 2005-06시즌 신인 시절 김연경은 28경기 110세트 출전해 756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27점을 터뜨린 셈이다. 득점 1위, 공격종합 1위(성공률 39.65%), 서브 1위(세트당 0.41개)에 이름을 올렸다. 황연주와 함께 흥국생명을 단번에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트리플크라운 역대 1호 주인공은 황연주다. 2006년 1월 7일 현대건설전에서 여자부 첫 번째 트리플크라운을 작성한 바 있다. 이어 역대 2호로 김연경이 2006년 2월 3일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계속해서 김연경은 3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2008-09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로도 선정됐다.

한국을 떠난 김연경은 11년 만에 다시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 2020년 다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계가 타격을 받았고, 2020 도쿄올림픽도 1년 미뤄진 상황이었다. 당시 김연경은 “이제 흥국생명 김연경으로 인사하게 됐다. 11년 만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벌써부터 많은 팬분들 만난 생각에 기쁘다”면서 “(복귀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국가대표 훈련을 해야 하는데. 해외 리그 재개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그런 부분이 V-리그 복귀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김연경은 꾸준히 리그 정상급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제 몫을 했다. 고참으로서 팀의 리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타 팀의 사령탑들은 2023년 아시아쿼터 도입 이후에도 흥국생명을 두고 “흥국생명은 외국인 선수 3명이 있는 것과 다름 없다”며 김연경을 경계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국내 복귀 후에도 공격종합 1, 2위를 오갔고, 득점 부문에서도 TOP10에 포함됐다.

2023년에는 V-리그에서 첫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기도 했다. 흥국생명에서 6시즌 동안 꾸준히 정규리그 출전 기록을 남기면서 FA 선수가 된 것. 타 팀 이적 가능성이 높았지만 결국 김연경은 흥국생명을 떠나지 못했다. 흥국생명과 1년 재계약을 맺고 잔류를 택했다. 2023-24시즌 이후 김연경의 은퇴설에 대해 그는 시상식에서 직접 “정말 고민했고 구단과도 이야기 많이 나눴다. 내년 시즌 많은 팬분들을 위해서 한 번 더 도전하기로 결심했다”며 현역 연장을 밝혔다.

이번 시즌 도중에는 새 기록을 남겼다. 2024년 12월 13일 V-리그 5000득점을 달성한 것. 오랫동안 V-리그에서 활약한 양효진(현대건설), 박정아(페퍼저축은행), 황연주(현대건설), 정대영과 한송이(이상 은퇴)에 이어 역대 6번째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김연경의 진정한 라스트 댄스가 시작됐다. 김연경은 은퇴 발표 이후에도 남은 시즌을 위해 스스로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는 “나만 준비가 됐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은퇴 발표한 날에도 잘 잤다. 감정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날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절친’ 김수지도 “옆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을 봤다. 어떤 타이밍에 얘기를 할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음에 담아놨던 것이 풀어진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면서 “연경이 입장에서는 팬들이 더 많이 즐겨주셨으면 해서 시즌 중간에 얘기한 부분이 있다. 선수들과 함께 한 경기 한 경기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더 좋은 경기력으로 임하려고 한다”며 힘줘 말했다.

이제 우승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고자 한다. 흥국생명은 2020-21, 2022-23, 2023-24시즌 모두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의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시즌에는 일찌감치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짓고 봄배구 모드에 나섰다. 그만큼 챔피언결정전을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김연경도 해피엔딩을 꿈꾼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KOVO, CEV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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