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과정 중 아픔인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리빌딩’ 시즌Ⅰ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1-04-04 02: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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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2020-2021시즌 도드람 V-리그에서 낯선 순위표를 손에 쥐었다. V-리그 출범 원년(2005년 겨울리그)부터 지난 시즌까지 두 팀은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우승 횟수에서 1, 2위에 올라있다. 삼성화재가 유니폼에 별 8개를, 현대캐피탈은 별 4개를 각각 새겼다.

올 시즌은 상황이 다르다. 삼성화재는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최하위(7위)가 됐다. 현대캐피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삼성화재보다 한 계단 앞선 6위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2014-2015시즌 5위에 그치며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한 뒤 맞은 두 번째 아픔이다. 실업배구 시절부터 전통의 라이벌로 꼽혀온 두 팀이 V-리그 봄 배구 진출에 나란히 실패한 건 올 시즌이 처음이다. 두 팀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올 시즌 ‘리빌딩’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이다.
 


필연적인 리빌딩
그러나 시련은 컸다


삼성화재는 리빌딩이 처음은 아니다. 시곗바늘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면 답이 나온다. 신치용 감독(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을 당시에도 리빌딩에 착수한 바 있다. 프로 출범 이전 슈퍼리그와 V-투어 연승과 연속 우승 주역인 김상우, 김세진, 신진식 트리오는 2006-2007시즌 종료 후 해체됐다. 2005-2006시즌이 끝난 뒤 김세진이 먼저 은퇴했고 김상우와 신진식은 2006-2007시즌 종료 후 정들었던 삼성화재 유니폼을 벗었다.

신치용 감독이 선수 구성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삼성화재가 2005-2006, 2006-2007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에 연달아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외국인선수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다. 안젤코(크로아티아), 가빈(캐나다), 레오(쿠바)가 뛰었던 시기 삼성화재는 7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2009-2010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무대에서 주전 세터로 오랜 기간 활약한 최태웅을 대신해 무릎과 발목 부상 등으로 두 시즌을 개점 휴업한 신예 세터 유광우(현 대한항공)를 기용하는 변화를 줬다. 그런데 신 감독의 리빌딩 범위는 넓지 않았다. 팀을 전면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신 감독이 소속팀 단장 겸 제일기획 부사장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그 뒤를 이어 팀을 맡은 임도헌(현 한국남자배구대표팀 감독) 감독과 이어 지휘봉을 잡은 신진식 감독 때부터 리빌딩이 빨리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두 사령탑도 리빌딩을 준비했다. 임도헌, 신진식 감독에 이어 팀을 맡은 고희진 감독은 리빌딩에 속도를 더 냈다. 앞선 세 사령탑과 견줘 범위도 넓었다. 전면적인 리빌딩에 초점을 맞추고 올 시즌을 맞았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오프시즌 한국전력으로 이적한 박철우가 리빌딩을 가속화한 방아쇠가 됐다. 고 감독은 우리카드, 현대캐피탈과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 5명을 바꿨다. 선수 이동은 올 시즌 개막 후에도 이어졌다. 한국전력과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이제 팀 내에서 신치용, 임도헌, 신진식 감독 시절을 모두 거친 선수는 고준용과 지태환 정도만 남았다. 그만큼 선수단 변화 폭이 컸다는 의미다.

‘고희진호’로 닻을 바꿔 단 삼성화재는 올 시즌 출발은 좋았다. 지난해 10월 18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 시즌 첫 경기에서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3-2로 이겼다. 고 감독은 V-리그 사령탑 데뷔전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리빌딩에 나서는 팀은 성적 하락이라는 상황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화재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 승을 올린 뒤 패배가 쌓였다.



시즌 초반에는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앞세워 선전했다. 그러나 계속된 풀 세트 접전 패배가 쌓이면서 선수들은 힘을 잃었다. 리빌딩을 선택한 팀에서 가장 경계해야하는 패배에 대한 익숙함이 삼성화재에게도 찾아왔다. 여기에 외국인선수 바르텍(폴란드)의 교체도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안됐다.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바르텍을 마테우스(브라질)로 바꿨지만 순위표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악재가 또 있었다. 지난 2월 V-리그 코트를 흔든 학교폭력 논란이 삼성화재를 비켜가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주전 미들블로커 박상하가 중·고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박상하는 논란이 된 학교폭력 건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이와 별개로 다른 학교폭력은 인정했고 결국 선수 은퇴를 선택하면서 코트를 떠났다.


그래도 계속되어야 할 리빌딩

삼성화재는 박상하의 은퇴로 다시 찾아온 오프시즌에 또 다른 과제를 풀어야 한다. 미들블로커 전력 보강 문제다. FA 자격을 얻는 안우재를 최대한 잔류시켜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부상에서 회복 중인 지태환이 있지만 박상하가 빠진 자리는 2021-2022시즌에도 커 보일 가능성이 크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이강원을 미들블로커로 고정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세터 자리도 문제다. 올 시즌 주전 세터로 뛴 이승원은 병역을 해결해야 한다. 입대를 더 미룰 상황이 아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노재욱이 돌아오지만 2021-2022시즌 도중이다. 이승원이 입대 후 노재욱 복귀 때까지 정승현만으로 버티기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 고 감독이 갖고 있는 고민 중 하나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수를 뽑아 전력을 보강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다음 달(5월)이면 외국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고 감독을 비롯한 각 팀 사령탑은 동영상과 프로필 자료만으로 외국인선수를 뽑는다. 삼성화재는 확률상 지난해 드래프트보다 앞선 1순위 지명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선택한 바르텍보다 기량이 더 나은 선수가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는다고 가정한다면 리빌딩 과정에서 팀 전력 향상에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리빌딩 과정 중 삼성화재가 매듭을 풀어야 할 일이 또 있다. 윙스파이커 자리에서 교통정리는 필요하다. 또 올 시즌을 통해 약점으로 드러난 리베로 자리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신인 박지훈이 선전했고 시즌 중 영입한 구자혁이 버티고 있지만 리시브와 수비 보강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윙스파이커 중에선 신장호, 황경민이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해당 포지션에서 상대적으로 리시브가 약점으로 꼽히는 선수가 많다. 자원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정말 필요할 때다.

삼성화재는 이번 오프시즌에도 선수단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외부 FA 영입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단 재구성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만약 트레이드쪽에 무게를 둘 경우 카드를 맞추기 위해 트레이드 블록 설정도 달라질 수 있다. 트레이드 불가 선수를 따로 정해두지 않고 소속팀 선수 모두를 이적 가능성에 올려둬야 한다. 리빌딩이 어려운 과정이라고 꼽히는 건 팀 성적 하락이 가장 큰 이유로 꼽한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선수단 구성에서 손해를 안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강제 리빌딩
효과와 결과는 있었다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와 조금은 다른 발걸음으로 리빌딩을 시작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현대캐피탈은 봄 배구 진출이 유력한 팀으로 평가를 받았다. 전광인이 입대로 팀을 떠났고 문성민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졌지만 신영석, 최민호가 버티고 있는 미들블로커진은 건재했다. 여기에 외국인선수도 지난 시즌 영입한 다우디(우간다)와 일찌감치 재계약했다. 팀 전력 변화 폭이 크지 않았다. 전력 누수도 적은 편이라 올 시즌에도 봄 배구를 넘어 챔피언결정전 우승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현대캐피탈은 목표를 바꿨다. 올 시즌 우승 도전에서 리빌딩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오프시즌 이승원을 삼성화재로 보내고 김형진을 영입했다.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있던 김재휘를 KB손해보험으로 보내고 대신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시즌 초반이던 지난해 11월 13일 한국전력과 트레이드를 통해 신영석, 황동일 등을 보내고 장신 세터 김명관을 비롯해 이승준 등을 영입했다. 한국전력은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에 앞서 리빌딩을 진행 중이던 팀이었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박철우 영입 이후 현대캐피탈과 트레이드를 통해 즉시 전력감 두 명을 데려왔다. 리빌딩을 접고 올 시즌 성적 향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현상 유지 또는 리빌딩을 놓고 고민하다 후자를 택한 현대캐피탈은 한국전력과 트레이드 이후 내리막을 탔다. V-리그 출범 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7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현대캐피탈도 앞서 리빌딩을 시도한 적이 있다. 김호철 감독이 소속팀 지휘봉을 마지막으로 잡았던 2014-2015시즌이 그랬다. 김 감독은 당시 팀내 베테랑 세터인 최태웅, 권영민(현 한국전력 코치)을 대신해 신인 이승원을 주전 세터로 전격 기용했다. 김 감독은 시즌 중반부터 이승원의 출전 시간을 늘렸다. 팀이 봄 배구 진출 가능성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주전 세터로 이승원이 나오는 횟수도 늘어났다. 하지만 당시 리빌딩은 세터 포지션에만 국한됐다.

김 감독에 이어 팀을 이끌고 있는 최태웅 감독은 한국전력과 트레이드 후 “(리빌딩은)언제든 시도했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시기를 언제로 잡을 건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더 기다리기보다는 이때가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은 적어도 올 시즌을 기준으로는 삼성화재보다 나은 성적표를 받았다. 최 감독은 “트레이드 후 솔직히 10승도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기대 승수를 적게 잡았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트레이드 후 정규리그 종료까지 12승을 올렸다.

김명관의 성장세는 눈에 띄는 부분이다. 현대캐피탈 합류 후 기존 선수들과 손발이 맞지 않던 김명관은 조금씩 맞아들어가고 있다. 최 감독은 “(김)명관이에게는 세터 자리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미들블로커로 전환도 생각해보자는 말을 하려고 했다”며 “이제는 조금씩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 시즌 후반부 들어 경기에서 뛰는 걸 보고 있으면 우리 팀뿐만 아니라 한국 배구에도 정말 큰 도움을 줄 선수가 될 거라 본다”고 강조했다. 이승준도 현대캐피탈 합류 후 부상으로 코트에 나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기대주’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최 감독은 “(이)승준이도 주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명관, 이승준의 성장세와 변화를 지켜보는 일도 다가올 2021-2022시즌 흥밋거리 중 하나다. 이승준의 경우 상무에 지원항 상태다.

최 감독은 김명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일례로 김명관과 함께 해외 유명 세터의 경기 동영상을 함께 보곤 한다. 플레이 스타일과 경기 운영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최 감독은 평소에도 해외배구를 많이 보곤 한다. 그는 김명관의 성장을 돕기 위해 두 선수를 롤 모델로 꼽았다.

국내 배구팬에게도 익숙한 이란 남자대표팀 주전 세터 사에드 마루프와 시모네 지아넬리(이탈리다)다. 두 세터는 김명관처럼 장신 세터에 속한다. 최 감독은 “(김)명관이도 마루프와 시모네 영상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웃었다. 시모네는 1996년생으로 김명관보다 한 살 많고 신장도 5cm가 더 큰 200cm다. 트렌티노에서 주전 세터로 뛰고 있고 지난 2015년 월드리그를 통해 일찌감치 이탈리아 성인대표팀에도 선발된 기대주다.

고희진 감독도 최 감독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국내 V-리그 경기는 전력 분석 차원에서 늘 자주 보고 있고 최 감독처럼 해외배구를 자주 본다. 선수단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한 과정이기도 하다. 고 감독은 “코로나19 상황이라 선수들과 밥을 함께 먹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그런데 (해외배구 영상을)함께 보고 있으면 선수들과 좀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선수들도 해당 플레이에 대해 말을 하고 서로 의견 교환도 나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잘 지키고 있다”고 했다.



현대캐피탈에는 트레이드로 온 두 선수 외에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새 얼굴 두 명이 또 다른 기대주로 평가받는다. 윙스파이커 김선호와 리베로 박경민이다. 박경민은 올 시즌 초반부터 당당히 주전 리베로로 뛰고 있다. 베테랑 여오현 플레잉코치가 버티고 있지만 그 자리를 꿰찼다. 리빌딩 기조에 맞춘 최 감독의 판단이었다. 박경민은 올 시즌 코트 안에서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김선호는 부상으로 V-리그 데뷔는 박경민보다는 늦었다. 그도 코트 출전 시간을 조금씩 늘렸고 주전 윙스파이커로 기용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윙스파이커 중에서 비교적 단신(188cm)으로 분류되는 신장이 약점이지만 신인답지 않은 배구 센스를 보이고 있다. 최 감독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2의 곽승석’(대한항공)으로 성장한다면 소속팀에는 큰 힘을 줄 수 있다.


기다림의 시간은
필요하다

리빌딩은 배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목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성적에 대한 부담이다. 리빌딩을 선언한 시즌 성적 하락은 이해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바로 다음 시즌부터가 문제가 된다.

성적이 지지부진할 경우 리빌딩 효과를 따지기 시작한다. 구단 안팎에서 그렇다. 팬과 각종 매체에서도 이야기 나오기 시작한다. 리빌딩이 두 시즌째를 넘어가면 압박 강도는 더 심해진다.

리빌딩에 걸리는 적당한 시기를 콕 집어 숫자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정된 선수층을 갖고 리빌딩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를 선택한 코칭스태프 나아가 구단 사무국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통은 이렇다. 리빌딩에 초점을 맞춘 뒤 그다음 시즌 목표치를 높게 잡는다면 그만큼 좌절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리빌딩을 쉽게 접을 가능성도 커진다. (리빌딩에 대한) 기대치를 가능한 보수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리빌딩 대신 목표나 방향성을 바꿀 수도 있다. 올 시즌 한국전력이 좋은 예다. 그러나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리빌딩은 이제 한 시즌을 치렀다.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건 아니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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