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승점을 쌓아온 현대건설이 어느덧 1위를 코앞에 둔 시점. 이 여정을 이끄는 두 선수는 담담하지만 확실하게 미래를 그리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17일 오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IBK기업은행과의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맞대결을 진행했다. 이날 경기에서 현대건설은 3-0으로 시원한 셧아웃 승을 거두며 승점 3점을 챙겼다.
이날 챙긴 승점 3점은 단순한 3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계속해서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선두 흥국생명의 뒤를 단 승점 1점 차로 뒤쫓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승점 3점을 만들기 위해 모든 선수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줬던 현대건설이지만 유독 눈에 띄는 선수는 있었다. 바로 양효진과 김다인이다. 이날 양효진은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등록명 모마)와 함께 팀 내 최다 득점인 15득점을 올렸다. 아웃사이드 히터나 아포짓 스파이커가 아닌 미들 블로커가 외국인 선수와 같은 득점을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양효진은 팀의 중심으로서 중앙을 지키며 빛나는 활약을 보여줬다.
김다인 역시 세터로서 모든 선수가 ‘신바람’ 날 수 있는 경기를 이끌었다. 이날 최다 득점을 올린 양효진과 모마는 각각 공격으로 10득점과 14득점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 위파위 역시 공격으로 8득점을 올렸다. 가장 많은 공격 득점을 기록한 모마의 공격 점유율이 34.02%에 그친다는 사실은 김다인이 이날 보여준 ‘분배 배구’를 증명한다.
현재 현대건설은 흥국생명을 쫓는 추격자의 입장에서 이번 시즌을 보내고 있다. 무패행진을 달리던 흥국생명이 주춤한 틈을 타 빠르게 따라붙은 현대건설이지만 유독 흥국생명을 잡을 기회가 오는 순간마다 승점을 얻지 못한 채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양효진 역시 이처럼 기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양효진은 “이상하게 1위를 할 수 있는 시점만 오면 경기력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웃었다. 이어 “정규리그에서 1위를 하면 좋겠지만 아직 시즌은 길게 남았고 다른 팀들 역시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만큼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우리도 상대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집중해서 매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고 덧붙인 양효진의 표정에서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현대건설은 지난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도 흥국생명을 잡을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김다인은 “너무 결과만 쫓다 보니 그 틀에 갇히게 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려 했고 계속해서 코트 안 선수들과 많은 얘기를 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선수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눈 덕분일까. 이날 김다인은 다양한 공격 루트를 선보이며 상대 블로커들을 따돌렸다. 최근 정지윤의 컨디션이 좋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이날 김다인이 보여준 모습은 현대건설에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활약이었다.
김다인은 “이번 경기에서 공격 루트가 다양할 수 있었던 건 받는 선수들이 잘 받아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경기 전에 첫 터치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면 공격수들이 편해지고 다양한 플레이가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공을 받아주는 선수들이 부드럽게 받아줘서 나 역시 수월하게 플레이를 했고 그래서 다양한 루트를 보여줄 수 있었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경기 전 강성형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문했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강 감독은 인터뷰실에서 선수들에게 즐겁게 할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이에 대해 양효진은 “코트에서 즐겁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에게 당한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 수가 없다”며 “이번 경기에서는 준비를 많이 해서 재밌게 즐길 수 있던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인지 이날 양효진은 팀 내 최다 득점인 15득점을 기록했다. 이중 공격 득점은 10득점. 블로킹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상대의 기세를 완벽히 막아냈다. 양효진은 “연습할 때부터 타이밍에 많이 신경을 썼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리듬으로 공격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날 현대건설의 코트 위에서는 선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3세트에 나온 위파위 시통(등록명 위파위)의 블로킹 후 위파위를 힘껏 끌어안는 양효진의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묻자 양효진은 “위파위는 평소 블로킹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자신이 블로킹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블로킹을 당했을 때도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크게 받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중요한 블로킹을 해낸 것을 보고 내가 더 기분이 좋아져서 자연스럽게 그런 리액션이 나왔다”며 웃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곧 정관장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정관장을 이긴다면 1위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겠지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정관장은 분명 까다로운 상대다. 더군다나 미들 블로커 양효진-이다현과 정호영-박은진은 물론 세터 염혜선과 김다인의 대결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김다인은 고개를 저었다. 김다인은 “배구는 팀플레이다. 그런 만큼 개인적인 대결 구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정관장은 강한 원투펀치를 가지고 있어 공격력이 좋은 팀인 만큼 우리는 조금 더 다양한 루트로 득점을 하며 상대를 공략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계획을 전했다.
현대건설은 오랜 시간 쌓아온 탄탄한 기반을 중심으로 1위 자리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그 중심에는 누구보다 든든히 중앙을 지키는 양효진과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김다인이 있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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