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공격수의 갑작스런 부상 이탈에도 한국전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토종 에이스 임성진이 날아올랐다.
한국전력은 지난 21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끝난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 4라운드 방문경기에서 OK저축은행을 세트스코어 3-1로 눌렀다.
마테우스(한국전력)의 부상 복귀전으로 기대를 모은 경기였다. 마테우스는 기존 외국인 선수 엘리안의 대체 선수로 지난해 12월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전력의 개막 5연승을 이끈 엘리안은 현대캐피탈과 1라운드 맞대결(3-2 승)에서 왼쪽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팀을 떠났다.
마테우스는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13일 OK저축은행과 3라운드 안방경기(1-3 패)에서 42점을 올리며 연착륙을 예고했다. 전반기 동안 5경기 124점으로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후반기를 앞두고 올스타 브레이크 중 복근 부상을 입어 이날(21일)에야 다시 코트를 밟았다.
경기를 앞두고 권영민 한국전력 감독은 "외국인 선수가 안 뛰다 보니 잘하고 있는데도 순위가 안 따라줘서 다른 선수들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오늘(21일)은 마테우스가 뛰니까 더 나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테우스는 이날 1세트 25-25로 맞서던 상황에서 블로킹을 시도하다 착지 중 크리스(OK저축은행)의 발을 밟고 그만 오른쪽 발목을 접지르고 말았다.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인대 파열로 6~8주 진단을 받았다.
마테우스가 빠지면서 1세트 후반 팽팽했던 듀스 싸움은 OK저축은행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대로 2세트 초반까지 OK저축은행의 강세가 이어지며 한국전력에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 임성진이 해결사로 나섰다. 차곡차곡 득점을 쌓아가던 임성진은 양 팀이 21-21로 기싸움을 벌이던 상황 천금 같은 서브 에이스 역전포를 터뜨리며 흐름을 뒤집었다. 기세를 올려 3세트까지 집어삼킨 한국전력은 4세트 더욱 빠른 페이스로 득점 사냥에 나섰고, 임성진의 서브 에이스로 만든 세트 포인트를 신영석이 속공으로 직접 마무리하며 짜릿한 역전극을 완성했다.
경기를 마친 뒤 임성진은 "마테우스가 다치고 나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힘든 경기가 되겠다 싶었는데 (이)원중이 형이 들어온 뒤 동료들과 얘기도 많이 하면서 분위기를 잘 풀어갔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우리는 원래 한 명이 40득점, 50득점을 하면서 이기는 팀이 아니다. 모두가 잘해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마테우스가 빠지긴 했지만 국내 선수끼리 똘똘 뭉치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한국전력은 이날 승리로 4연패를 끊어냈다. 기나긴 연패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도 팀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권영민 감독의 덕장 리더십 덕분이다.
임성진은 "연패가 길어지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도 있는데 감독님이 먼저 장난을 치고 분위기를 밝게 만드려 노력했다. 자칫하면 분위기가 크게 처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님이 먼저 다가와줘서) 좋았다"고 전했다.
임성진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가짐에 특별히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그는 "(FA를)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FA를 생각하다 보면 해야 할 것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원래 하던 몫을 코트에서 충분히 보여주자는 느낌으로 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특유의 성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전력은 23일 현재 9승13패, 승점 23으로 6위에 위치해 있다. 어느덧 3위 KB손해보험(12승10패·승점 33)과 격차가 꽤 벌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잔여 시즌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순위표를 뒤집을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임성진은 "(이번 시즌 목표는) 팀으로서는 봄배구에 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팀에서 리시브와 공격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는 상황인데, 잘 받고 잘 때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0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한국전력에 입단한 임성진은 5번째 시즌을 맞이하면서 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전력의 미래에서 현재로 발돋움한 것이다.
임성진은 "올해 벌써 27살이 됐더라.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윤)하준이가 20살인데 내 밑에 동생들도 많이 생겼다. 코트에서 형들에게 의지하기보단 후배들이나 동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선수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감을 갖고 임하려 한다"고 전했다.
글_수원/송현일 기자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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