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막 내린 그들의 배구’ 여자부 PS 탈락팀 이야기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1-04-05 01: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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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숨가쁘게 달려온 V-리그. 역대 최고 TV 시청률 등 숱한 기록들도 쏟아지며 자연스럽게 봄 배구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꿈의 무대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여자부에선 딱 절반의 팀에만 주어지는 챔피언을 향한 초대장. 한국도로공사, KGC인삼공사, 현대건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잔치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비시즌 기간 정규시즌 우승, 그리고 봄 배구 무대. 나아가 더 큰 목표까지 꿈꾸며 구슬땀을 흘린 이들은 왜 일찌감치 시즌을 마칠 수밖에 없었을까. 2020-2021시즌을 돌아보며 봄이 아닌 겨울에 시즌을 끝낸 세 팀의 속사정을 살펴본다.
 


한국도로공사

불안했던 출발, 더 아쉬운 마무리
올 시즌 도로공사의 성적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현대건설에 셧아웃 패배를 당하며 불안하게 시작한 시즌. 바로 다음 경기에서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다음 승리를 거두기까지 쉽지 않았다. 6연패를 당한 뒤에야 IBK기업은행을 제물로 시즌 두 번째 승리 맛볼 수 있었다. 이 경기 전까지 도로공사의 성적은 1승 7패로 처참했다.

먹구름이 드리운 도로공사는 3라운드부터 순위 싸움에 불을 지폈다. 팀 조직력이 맞춰지면서 안정감을 찾아갔다. 또 시즌 초반 기복이 심했던 외국인 선수 켈시 페인이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어긋났던 톱니바퀴가 점차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1~2라운드에서 공격종합 36%대에 머물던 켈시는 3라운드에 42%로 반등에 성공했고 4라운드에서 45.6%로 V-리그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봄내음이 물씬 풍겼던 도로공사의 상승세. 시즌 종료까지 세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두 경기를 남긴 기업은행에 승점 1이 적은 4위에 자리하면서 자력 봄 배구 진출 자격까지 갖췄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인삼공사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데 이어 전력 누수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흥국생명에도 덜미가 잡히며 스스로 무너졌다. 마지막 경기인 현대건설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지만 이미 봄 배구 초대장은 그들의 손을 떠난 뒤였다.

코트를 떠난 야전사령관…에이스의 기복
시즌 초반만 잘 풀렸다면 도로공사의 마무리는 달랐을지 모를 일이다. 출발이 불안했던 데는 베테랑 세터 이효희의 은퇴가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다. 불혹의 세터 이효희는 올 시즌을 앞두고 선수 은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코치로 자리를 옮겨 지도자로서 시작을 알렸다. 아직 현역으로 뛰기에 충분하다는 의견이 적잖았지만 이효희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은 물론 팀의 세대교체를 위해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이효희의 은퇴로 세터진에 공백이 생긴 도로공사는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세터 이원정을 GS칼텍스로 보내고 이고은을 데려오는 선택을 했다. 이미 GS칼텍스에서 주전 세터로 뛰었던 이고은은 이효희의 공백을 말끔히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도로공사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팀 공격을 이끌어야 할 켈시-박정아와 엇박자는 곧바로 팀 성적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분명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팀의 봄 배구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에이스 박정아의 기복도 뼈아픈 도로공사다. 박정아는 1라운드에서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5경기에서 57득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공격종합도 26.5%에 불과했다. 팀 공격의 핵심 역할을 맡은 선수의 기록이라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사실상 박정아의 컨디션에 따라 팀 성적도 크게 요동쳤다. 3라운드 106득점, 공격종합 39%로 박정아가 살아나자 덩달아 도로공사의 반전도 시작됐다.

시즌 마지막 기회를 살리지 못한 도로공사지만 사실상 시즌 초반 부진만 없었다면 일찌감치 봄 배구 진출을 확정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윙스파이커 전새얀의 약진과 더불어 베테랑 미들블로커진 정대영-배유나, 그리고 리베로 임명옥이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였기에 팀이 받아든 마지막 성적표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김종민 감독 역시 가장 아쉬움이 남는 시즌으로 꼽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 감독은 “출발은 어렵게 했지만 중간에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면서 분명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 막판에 선수들이 부담감을 느꼈고,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진 게 보였다. 시즌 중반에 치고 올라가기 위해 연습량을 늘린 것이 과부하로 이어진 것 같다. 감독의 판단 미스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김 감독은 “여자팀을 맡은 이후 가장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지만 후회는 없다”라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따라와 줬다. 켈시도 그렇고 베테랑들도 잘해줬다. 앞으로도 충분히 플레이오프 이상 갈 수 있는 전력이다”라고 선수들을 향한 신뢰를 드러냈다.



KGC인삼공사

디우프가 있는 팀…디우프만 있는 팀
인삼공사의 최대 강점은 외국인 선수 발렌티나 디우프가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2019-2020시즌을 앞두고 팀에 합류한 디우프는 단숨에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V-리그 데뷔 시즌에서 832점을 몰아치며 리그 전체 득점 1위에 올랐다. 공격종합(41.31%)에서도 3위에 오르며 팀 공격의 핵심으로 불렸다. 디우프의 득점력은 이번 시즌 더욱 높아졌다. 963점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득점을 챙겼다.



하지만 이 같은 디우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인삼공사는 올 시즌을 5위(13승 17패·승점 39)로 마쳤다.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도 이 같은 성적에 머문 이유는 함께 공격을 이끌어야 할 선수들의 부재 때문이다. 디우프는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높은 50.6%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했다.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을 디우프가 책임진 것이다. 때문에 인삼공사를 상대하는 팀들의 공식은 ‘디우프만 막으면 된다’로 굳혀졌다.

디우프에 집중된 공격과 견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윙스파이커진의 약진이었다. 인삼공사의 한 쪽 날개는 그러지 못했다. 최은지가 윙스파이커 중에서 가장 많은 229점을 기록했지만 이는 디우프 홀로 챙긴 득점의 1/3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이어 고의정(170점), 고민지(73점), 지민경(63점)에 이어 신인 이선우(41점)까지 코트에 나서며 디우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기대한 공격력과 효과는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인삼공사의 윙스파이커 고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몇 년간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공격수 영입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알레나 버그스마, 디우프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인삼공사다.

기대를 모았던 시즌
부상 악령이 삼켜버린 꿈

인삼공사의 계획은 어쩌면 시즌 개막과 함께 틀어졌을지 모른다. 인삼공사는 2020년 10월 18일 안방 대전충무체육관에서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개막전을 치렀다. 선수와 팬들 모두 손꼽아 기다린 배구의 시작. 하지만 인삼공사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기대를 모은 정호영이 부상이 발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정호영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인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공격수였다. 지난 시즌 전체 1순위로 인삼공사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너무 과한 관심 탓인지 정호영은 부담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을 빗댄 수식어도 오히려 정호영에겐 독이 됐다. 결국 이영택 감독은 정호영을 수비 부담이 적은 미들블로커로 포지션 변경을 택했다. 정호영 역시 비시즌 기간 미들블로커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며 의욕을 갖고 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맞이한 첫 경기. 하지만 정호영은 이 경기에서 공격 후 착지하다 무릎이 꺾이는 아찔한 부상을 겪었다. 이로 인해 전방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은 정호영은 힘찬 출발을 뒤로한 채 시즌을 조기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영택 감독도 정호영의 부상을 가장 아쉬운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개막전에서 정호영이 다쳤는데 아쉽다. 경기 결과가 아니라 부상이 나왔다는 게 아쉽다”며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호영이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다. 실력이 느는 모습도 보여서 분명 우리에게 좋은 전력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첫 경기부터 그렇게 됐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베테랑 세터 염혜선의 부상도 뼈아팠다. 염혜선은 지난 2월 블로킹 훈련 도중 오른손을 다쳤다. 이로 인해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잔여 시즌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하효림이 염혜선을 대신해 코트에 나서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부분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주전 세터의 유무는 분명 팀 조직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기에 염혜선의 공백은 베스트 전력을 구성하는 데 있어 분명 머리가 아픈 부분이다.


현대건설

1위에서 최하위…1년 만에 달라진 위상
현대건설은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된 2019-2020시즌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비록 봄 배구가 열리지 않으면서 통합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외국인 선수 교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장기레이스에서 값진 결과를 얻어낸 점은 박수받기에 마땅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바로 전 시즌 1위에 올랐던 팀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성적표를 받아든 현대건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건설은 시즌 준비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 팀에서 뛰었던 고유민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선수단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또 이번 일이 구단과 유족 간의 법정 다툼으로 번져 사실상 팀 전체가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팀의 중심을 맡고 있던 세터 이다영의 이적도 전력 누수로 이어졌다. 이도희 감독 부임 이후 신임을 받으며 코트에 나서는 시간을 늘려가던 이다영은 점차 기량이 만개하며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없어 선 안될 선수로 성장했다. 장신 세터라는 장점과 더불어 ‘세파이커’라는 별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공격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이다영을 중심으로 현대건설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올 시즌을 앞두고 이다영은 쌍둥이 언니 이재영(흥국생명)과 함께 뛰기 위해 이적을 택했다. 현대건설 역시 이다영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양한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의 선택을 뒤집지 못했다.

이다영의 이적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진 현대건설은 기업은행과 트레이드를 통해 이나연을 데려왔다. 국가대표팀 경력도 있기에 이다영의 공백을 채워줄 최적의 카드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나연은 현대건설이 자랑하는 중앙 공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이내 김다인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다. 김다인은 2019년 컵 대회에서 팀 주전 세터로 우승을 맛봤지만 이다영에 밀려 기회를 잡지 못하다 다시 주전으로 나설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나연과 김다인 그 어느 쪽도 이다영의 공백을 말끔히 지우지 못했다. 특히 이다영의 강점은 높이다. 전위에 있을 때 더욱 빛난다. 지난 시즌 세트당 0.453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현대건설이 명실상부 최고 높이의 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다영은 또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디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올 시즌 김다인은 세트당 블로킹 0.065개에 그쳤다. 이나연은 단 한 차례의 블로킹도 기록하지 못했다.

집 밖은 위험해
블로‘퀸’ 자리에서 내려온 양효진

올 시즌 현대건설은 홈 경기와 원정 경기에서 완전히 다른 팀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30경기를 치르면서 거둔 11승 가운데 9승을 안방에서 기록했다. 원정에서 얻은 승리는 단 2승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여자부 정규시즌 1위에 오른 GS칼텍스를 상대로 안방에서는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김연경이 버틴 흥국생명을 상대로도 홈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상대 전적 3승 3패를 맞췄다. 강팀을 상대로 선전했던 현대건설. 그러나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팀으로 평가받던 팀들과 맞대결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인삼공사와 기업은행에는 2승 4패를, 도로공사에는 1승 5패로 밀렸다. 안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원정 승리가 따라주지 않다 보니 팀 순위 역시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뿐이었다.



‘블로킹의 여왕’으로 불리던 양효진의 모습도 완전하지 않은 시즌이었다. 양효진은 2009-2010시즌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까지 무려 11시즌 연속 블로킹 1위에 오른 V-리그 대표 미들블로커다. 양효진의 존재감으로 인해 현대건설 역시 ‘높이의 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양효진은 올 시즌 세트당 블로킹 0.545개로 리그 5위에 머물렀다. 양효진이 물러난 자리는 인삼공사의 한송이(세트당 0.699개)가 차지했다.

양효진이 주춤하면서 팀의 높이도 전체적으로 낮아졌다. 지난 시즌 블로킹 전체 1위(세트당 2.467개)에 올랐던 현대건설은 올 시즌 5위(세트당 2.057개)로 내려앉았다.

1위에서 최하위로 추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여러 악재로 인해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현대건설은 시즌을 마치자마자 칼을 빼 들었다. 4년 동행을 함께한 이도희 감독과 이별을 통해 팀 변화를 꾀하겠다는 계산이다.


글. 송대성 CBS노컷뉴스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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