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꽃중년' 대한항공 산틸리 감독 "한국은 새로운 기회, 새로운 도전"

이정원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4 00:29:41
  • -
  • +
  • 인쇄

지난 5월 말, 대한항공은 팀의 전성기를 이끈 박기원 감독을 대신해 이탈리아 출신 로베르토 산틸리(55)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데려왔다. V-리그 남자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다. 산틸리 감독은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 결승에서 한국전력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때 패배는 산틸리 감독을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산틸리 감독이 경험한 한국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9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대한항공 전용연습장으로 달려가 산틸리 감독을 만나고 왔다. 코트 위 산틸리는 무서울지라도 코트 밖 산틸리는 신사였고, 유쾌했다.

 


한국생활은 날씨 빼고 모두 다 만족

산틸리 감독은 한국 생활에 굉장히 만족감을 드러냈다. 최고의 숙소와 최고의 조리진 그리고 한국 문화가 자기 스타일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떨어져 있는 가족들 이야기가 나오면 슬퍼하는 가족적인 남자다.

 

Q__한국에 온 지 어느덧 넉 달이 지나가고 있다. 어떤가. 

한국 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낸 생활은 정말 만족한다. 판타스틱하다. 다만 날씨 적응이 힘들다. 그 부분 빼고는 모두 괜찮다. 

 

Q__한국 날씨가 정말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날씨를 경험해본 적 있나.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한 시간 전에는 분명 비가 왔는데 또 한 시간 후에는 해가 쨍쨍하다. 특히 장마가 짧을 줄 알았는데 길었다. 그래도 날씨는 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다. 괜찮다.

 

Q__대한항공 숙소와 시설을 직접 겪어보니 어떤가. 

이보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너무 만족한다. 한 가지 비밀을 말하고 싶다. 우리 조리사진이 정말 최고다.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비결은 그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Q__본격적인 배구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 리그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기회를 살리고 싶었다. 유럽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한국에서도 발휘하고 싶다. 새로운 도전을 늘 꿈꾼다. 

 

Q__V-리그 남자부 첫 외국인 감독이다.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영광이다. 한국에서의 감독 생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아시아와 유럽은 다르다. 이런 것도 하나의 도전이다. 나아가고, 모든 부분을 이해하려고 한다. 

 

Q__한국에 오면서 전력 분석가인 프란체스코 올레니 코치를 데려왔다. 

올레니 코치는 경기 훈련이나 분석에 능해 우리 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팀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인 코치들과 올레니 코치가 함께 뭉치면 더 좋은 시너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Q__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에서 감독 생활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럼에도 한국행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상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라고 해서 외국은 일상생활에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간단하게 생각을 하려 했다. 새로운 도전에만 신경을 썼다. 

 

Q__지난 6월 공식 기자회견 당시 스테파노 라바리니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과 KGC인삼공사 발렌티나 디우프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당시 산틸리 감독은 “개인적으로 라바리니 감독, 디우프와 아는 사이다. 오기 전에도 문자를 나눴다. 디우프에게 물어보니 이만한 곳이 없다고 하더라. 디우프가 한국으로 오라고 계속 꼬셨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아마존 라이브챗’을 통해 연락을 나눴다. 라바리니 감독은 이번 여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디우프는 남편과 함께 나의 집에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을 정도로 친하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더라. 한국 문화나 스타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친해졌다. 

 

Q__한국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어떻게 보냈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렸기에 함께 다니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 혼자 떠나는 편이다. 영상 통화를 하지만 여전히 그립다.

 

Q__가족들과 헤어진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이들이 많이 컸다. 어렸을 때에는 같이 다녔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두 컸고, 서로의 삶과 생활을 존중해 주고 있다. 전화 통화는 매일 나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마다 새로운 가족들이 있어 힘들지 않다(웃음). 

 

 

“짧은 선수 생활 후회? 전혀 없다”

산틸리 감독은 대략 25년이 넘도록 지도자 생활을 했다. 산틸리 감독은 20대 초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은퇴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기억이다. 짧은 선수 시절과 그간 겪은 감독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Q__전임 박기원 감독이 팀을 잘 만들었다. 박기원 감독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박기원 감독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이탈리아리그에서 함께 뛴 바 있다. 대한항공을 잘 이끌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있지만 박기원 감독과 나는 다르다. 대한항공이라는 팀을 다이나믹하고 정체되어 있지 않는 팀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더 발전하기 위해 매일매일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을 이뤄야 하는지 코칭스태프와 의견 교환을 항상 하고 있다. 


Q__선수 시절에는 세터 포지션에서 뛰었던 걸로 알고 있다. 선수 시절을 되돌아본다면 선수 산틸리는 어땠나.

어렸을 때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부상이 있어 이른 은퇴를 해야만 했다. 1970년대만 해도 배구 환경이 좋지 못했다. 은퇴 후 20대 후반부터 코치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에너지가 넘쳤다. 코치라는 게 선수와 다르게 복잡성이 있다. 서로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코치는 때론 심리학자가 되어야 하고, 때론 선생님도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행복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본다.  

 

Q__짧은 선수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전혀 후회가 없다. 지금 돌아가도 빠르게 은퇴를 택했을 것이다. 나는 지도자가 더 좋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 행복하다.

 

Q__첫 지도자 생활은 어땠나(산틸리 감독은 1996년 AS 카푸르소 지올라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팀이나 리그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팀 내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이른 나이에 감독이 되었지만 베테랑 선수들이나 젊은 선수들 모두 잘 따라줬다. 그리고 그 안에는 프로가 아닌 세미프로 선수들도 있었다. 모두가 나를 잘 따라줘서 지금도 고마울 뿐이다. 사실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오전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선수들과 운동을 했다. 

 

Q__여러 나라를 경험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 배구 공부를 많이 했다. 나 때만 해도 러시아는 배구 강국이었다. 러시아에서 감독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든 생각이 ‘꿈은 진짜 이뤄지는구나’였다. 러시아 배구 공부를 했던 내가 러시아 팀 감독을 맡고 있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 당시 훌륭한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국가대표 출신도 여럿 있었다. 내 커리어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난 럭키가이다(산틸리 감독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러시아리그 이스크라 오딘초보 감독 생활을 했다).

 

Q__유럽 리그는 한국 리그와 어떤 점이 다른가.

예전에 한국팀과 맞붙은 경험이 있다. 한국은 스피드나 공격은 수준급이나 수비와 블로킹은 아쉬웠다. 한국은 조직적인 배구를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특히 파이팅 넘치고 득점하고 나서 펼치는 세리머니가 재밌다.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코트 위 세리머니가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동이라고 하더라. 그런 세리머니는 보는 사람들을 더 재밌게 만든다. 또 한국은 단합이 좋다. 비예나가 했던 행동들만 보더라도 외국인 선수도 쉽게 뭉칠 수 있는 리그라는 것을 알수 있다. 

 

Q__감독 생활하면서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는 ‘실수’다. 선수가 코트 위에서 실수하는 거는 당연하다. 그런데 그 실수를 선수들이 어떻게 반응하냐가 중요하다. 실수했다고 기가 죽으면 그 경기는 곧 패배로 이어진다. 대한항공 선수들에게도 항상 강조한다. 경기 중 실수를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실수를 극복할 힘을 길러야 한다.

 

 

나이는 젊지 않아도 마음은 젊은 ‘꽃중년’

 

Q__배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일상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평소 SNS를 활발하게 한다고 들었다. 

사실 SNS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시대로 가고 있다. 받아들여야 한다. SNS 하는 방법은 딸이 알려줬다. 딸이 꼭 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더라(웃음). 처음에는 딸이 올릴 소재들을 알려줬지만 이제는 내가 업데이트나 게시물을 고른다. SNS는 유용하다. 해외 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상대방과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다. 하루에 조금만 시간을 내면 할 수 있는 게 SNS다. 

 

Q__한국말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괜찮아요. 좋아요(한국말로 또박또박). 문장도 준비를 했는데 하지 못하겠다. 

 

Q__한국 문화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문화는 어떤 문화인가.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젠틀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나라 문화를 흡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한국 문화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Q__한국 음식 중 괜찮았던 음식은 무엇인가.

식당 이름을 기억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오징어볶음이나 한국식 바비큐가 맛있더라.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우리 팀 조리장이 해준 요리가 가장 맛있다. 이날 점심에 나온 가지볶음, 데리야키 치킨도 괜찮았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먹을 때마다 1/2만 달라고 한다. 

 

Q__갑자기 궁금한 게 있다. 정통 이탈리아 돈가스와 한국에서 파는 이탈리아 돈가스는 맛이 다른가.

궁금한가? 그럼 우리 집으로 와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웃음). 


Q__초대 감사하다. 이런 유머를 던지는 걸 보면 평상시 산틸리는 유쾌한 사람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꽃중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감사하다. 나이는 젊지 않지만 마음만은 젊고 싶다. 궁금증, 호기심이 굉장히 많다. 또한 새로운 문화 겪는 것을 좋아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괴롭히면서까지 알아내려고 물어본다. 살아있는 젊음을 유지하려 한다. 

 

Q__그렇다면 감독 산틸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배구를 매사 진지하게 접근한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더 심각하고, 더 진지하게 접근했다. 지금은 유연해진 것이다. 나는 배구를 즐기면서 해야 된다고 본다. 연습할 때도 즐겨야 한다. 선수들이 행복하거나 기분 좋을 때 훈련을 해야 반응이 잘 온다. 스트레스가 올라가면 기량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즐겨야 한다. 주변 환경도 그렇게 구성을 해야 한다. 

 

 

우승을 해야 된다? NO

“우승을 원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Q__시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컵대회 준우승 아쉬움을 털어내고 싶을 것 같다. 

컵대회 끝나고 선수들에게 휴가를 줬다. 휴식을 취하고 오라고 했다. 컵대회 결과에 대해서는 화가 났지만 우리의 레벨과 시즌 준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았다. 선수들 역시 새로운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선수들이 컵대회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Q__각 팀 전력 분석은 어느 정도 끝났나. 

계속 분석하고 있다. 컵대회에서 외국인 없이 뛴 팀도 있다. 그래서 밸런스 차이도 있었다. 분석을 하면서 각 팀들을 체크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 팀을 고른다면 KB손해보험이 기대된다. 케이타가 들어오고 흥미로운 팀이 된 것 같다.


Q__두 시즌 연속 대한항공에서 뛰는 비예나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것 같다. 

비예나랑 자주 연락을 했다. 2021 유럽배구선수권대회 예선 일정 때문에 팀에 늦게 합류했다. 그로 인해 체력이나 전체적인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예나의 컨디션이 베스트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우리에게는 같은 포지션인 임동혁도 있기에 문제없다. 

 

Q__임동혁에 대한 잠재력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혹시 다른 팀에서도 눈여겨본 선수가 있나.

당연히 흥미로운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말하면 큰일 날 것 같다(웃음). 다른 팀뿐만 아니라 대학팀에도 기량 좋은 선수들이 많더라. 


Q__대한항공은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팀이다. 부담감 없나. 첫 외국인 감독이기에 더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승을 해야 된다? 아니다. 우리는 우승을 원하는 팀이 되고 싶다. 선수들 역시 우승을 원하는 팀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른 팀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우승을 해야 되는 팀이 아니라 우승을 원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

 

Q__우승을 원하는 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터이자 팀 내 정신적 지주 한선수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선수를 당연히 믿고 있다. 우리 팀에는 한선수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성격이나 기량 모두 좋은 선수다. 

 

Q__V-리그에서 보여주고 싶은 산탈리식 배구는 무엇인가. 

이미 컵대회에서 보여준 게 나의 배구다. 여러 가지 기술을 시도하려고 한다. 배구는 다이나믹하기에 예상할 수 없다. 우리 팀은 새로운 전술들을 시도하고 있고, 그 결과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리그 때 우리의 새로운 모습들을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Q__잡지 인터뷰 어땠나.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굉장히 즐거웠다. 오랜 감독 생활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닌가 싶다. 

 

Q__V-리그는 열정 있는 팬들과 화려한 응원이 돋보이는 곳이다. 팬들에게 한 마디 전해달라. 

대한항공은 오늘도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시즌 들어가서도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다. 코로나19가 사라져 팬들과 얼른 코트 위에서 호흡하는게 꿈이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겠다. 감사합니다. 

 

 

글/ 이정원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영상 촬영 및 편집/ 하태민 마케팅 팀장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