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대표를 꿈꾸는 ‘몽골청년’ 인하대 바야르사이한

강예진 기자 / 기사승인 : 2020-05-30 21:21:00
  • -
  • +
  • 인쇄


‘바야르사이한’ 이름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지 않는가. 더군다나 그의 플레이를 보면 남다른 파워가 느껴진다. 그는 몽골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세계무대를 누비는 꿈을 꾸고 있다. 코트 안에서는 파이팅 넘치는 선수로, 코트 밖에서는 순수한 몽골 청년으로 살아가는 인하대 배구선수 바야르사이한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에 오게 된 사연부터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겪었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4월 15일 인하대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낯설었지만 슬기로웠던 한국생활
바야르사이한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배구를 접했다. 가족 모두가 배구를 즐긴 덕에 바야르사이한 역시 항상 배구와 함께 했다. 부모님을 따라간 체육관에서 배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내 흥미를 가지게 된 그는 눈에만 담아뒀던 배구를 몸으로 느꼈다. 매일 배구를 즐기면서 어느덧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2016년 11월 바야르사이한은 몽골에서 큰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가 속한 팀이 결승에 올라갔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당시 결승전을 지켜봤던 순천제일고 이용선 감독의 눈에 바야르사이한이 들어왔다. 그의 배구 재능을 눈여겨 봤던 이용선 감독은 그에게 다가가서 ‘한국에서 배구를 해보지 않겠냐’라고 말을 건넸다. 바야르사이한은 부모님과 상의 끝에 2017년 1월 한국 땅을 밟았다.

바야르사이한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용선 감독이 직접 그를 데리러 공항에 왔다. 바야르사이한은 그때를 회상하며 “사실 오랜 비행시간에 지쳐있어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아요. 그래도 몽골과 달리 무척 높은 한국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공항을 나와서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너무 이뻤어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19살이었던 바야르사이한은 한국에서 첫 훈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일 1훈련이었던 몽골과 달리 1일 3훈련의 시스템에 적잖이 놀랐다. 바야르사이한은 “한국에 와서 오전, 오후 훈련을 하고 밥을 먹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운동 나가자!’라고 하는 동료의 말에 순간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랴부랴 마지막 훈련을 하러 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저도 허둥지둥 따라 나갔어요”라며 웃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지금 바야르사이한은 막힘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3년 전을 떠올린 바야르사이한은 “저랑 몽골에서 같이 왔던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어요.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와서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해서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특히 훈련을 할 때 다들 집중을 해서 말을 잘 하지 않더라고요. 어떤 부분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적응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손준영(명지대)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을 했고, 차츰 한국 생활에 재미가 붙었다. 바야르사이한은 “손준영 선수가 영어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르는 건 영어로 대화를 나눴어요. 그러고는 빨리 한국어 배우자며 인터넷으로 공부를 했어요. 항상 한국 친구들이랑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이 빨리 늘었어요”라면서 “훈련 이외 시간엔 동료 선수들을 따라 다녔어요”라고 덧붙였다.

바야르사이한은 순천제일고 졸업 후 인하대에서 1년 동안 합숙생활을 했다. 1년이 지난 2019년에는 정식으로 인하대 학생이 됐다. 생애 첫 캠퍼스 생활은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훈련은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들어야 하는 대학 생활이 낯설게 다가왔을 뿐더러 자신이 직접 시간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바야르사이한은 “아직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듣고, 시간표를 익혀야 했죠. 그래도 학교 내에 외국인을 도와주는 서포터가 있어 수월하게 생활할 수 있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잊지 못할 첫 우승의 추억
바야르사이한은 2019년 대학배구연맹에 대학선수로 정식 등록됐다. 키 198cm인 그는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시원한 공격과 더불어 신입생다운 패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주일마다 경기를 하는 리그에 적응하며 재미를 느끼고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바야르사이한은 대학리그 첫 경기를 떠올렸다. “긴장됐지만 괜찮았어요. 옆에서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었고, 파이팅을 크게 외치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범실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도 했어요.”

바야르사이한은 팀 내에서 동기 신호진과 함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하고 있다.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자신감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바야르사이한은 웃으며 “1학년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거죠. 의식적으로 하기 보다는 저는 세리머니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경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기자가 그에게 평소 신호진과 세리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고 물어보자 그는 “전혀 이야기 안해요. 그냥 코트에 들어가서 보면 서로 하고 있더라고요”라며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인하대는 2019 현대캐피탈배 전국대학배구 인제대회에서 홍익대를 누르고 2년 만에 왕좌 탈환에 성공했다. 바야르사이한은 마침내 한국에서 첫 우승을 경험했다. 한국에서 배구로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그이기에 그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결승전에서 블로킹 3개를 포함, 총 12점을 올리며 팀에 보탬이 됐다. 공격 성공률은 팀에서 가장 높은 75%에 달했다. 바야르사이한은 당시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몽골에서는 우승 많이 해봤어요. 한국에 와서는 첫 우승이라서 그런지 눈물이 났어요. 울었어요”라면서 “부모님께서 많이 좋아하셨어요. ‘축하한다’, ‘우리 아들 잘하고 있다’, ‘더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농구보다는 배구가 신사적인 스포츠잖아요”
사실 바야르사이한은 한국에 들어오기 전 몽골에서 배구와 농구를 겸했다. 몽골 청소년 농구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농구에서도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였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었다.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던 바야르사이한은 농구공 대신 배구공을 잡았다. 그는 “배구 감독님과 농구 감독님께서 이제부터는 하나만 택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부모님과 상의를 한 끝에 배구를 선택했죠. 농구도 재밌지만 서로의 몸을 부딪히며 경기를 하다 보면 다칠 위험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그에 반해 배구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농구처럼 선수들끼리 몸싸움을 안하잖아요. 농구보다 깨끗한 스포츠라고 생각했어요”라며 이유를 밝혔다(바야르사이한이 말하는 깨끗한 스포츠는 아마 ‘신사적인 스포츠’라는 의미일 것이다).

몽골 청소년 배구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다만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몽골 청소년 대표로 부름을 받아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는 중이라 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아포짓 스파이커? 미들블로커? 둘 중 하나만 고르는 건 어려워요”
바야르사이한은 그야말로 만능 선수였다. 배구를 처음 시작할 땐 아포짓 스파이커였지만 몽골에서 경기를 뛸 땐 필요한 포지션에 적절히 투입됐다. 그는 “몽골 고등학교에서 뛸 땐 제가 팀의 중심이었어요. 우리 팀에서 서브를 넣으면 블로킹을 하려 미들블로커 자리에 서봤고, 상대팀이 서브를 넣을 때면 리시브를 한 뒤에 후위, 전위 가리지 않고 공격했어요”라고 말했다.

순천제일고에 왔을 땐 한동안 윙스파이커로 뛰었다. 한창 훈련을 하던 도중 미들블로커였던 김승구(명지대)가 부상을 당해 해당 포지션에 공백이 생겼다. 바야르사이한은 감독에게 먼저 본인이 미들블로커를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용선 감독은 연습경기서 바야르사이한을 미들블로커로 투입했다. 이내 만족감을 드러냈고 그를 미들블로커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대학리그에서 바야르사이한은 팀 사정상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겸해야 했다. 중앙을 지키는 미들블로커로 뛰다가 어느새 후위 공격까지 가담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야르사이한에게 아포짓 스파이커와 미들블로커 중 하나를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후에 “못 고르겠어요”라고 답했다. 두 포지션에 두고 그는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바야르사이한은 “아포짓 스파이커는 높게 오는 공을 공격한다는 점이 좋아요. 미들블로커는 단연 블로킹이죠. 블로킹을 하고 난 뒤 세리머니 하는 게 짜릿해요”라고 설명했다.


“한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게 꿈이에요”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귀화문제다. 바야르사이한은 2017년 1월부터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프로배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취득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V-리그 첫 귀화 선수로 한국국적을 취득한 진 지위(대한항공)는 특별귀화 사례에 해당한다.



바야르사이한이 바라보고 있는 방법은 일반귀화다. 일반귀화의 자격 요건은 5년 이상 거주를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기간은 연속 체류 기간만이 해당된다. 그는 올해로 한국 생활 3년 차를 맞이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5년이라는 기한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이외에 기본적으로 국어능력 및 대한민국의 풍습에 대한 이해 등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귀화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바야르사이한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 역사나 기본적인 상식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인하대 최천식 감독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께서는 프로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라고 하셨어요. 항상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바야르사이한은 한국에 온 뒤로 V-리그를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V-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는 “아포짓스파이커와 윙스파이커로 뛸 때는 현대캐피탈 문성민 선수와 전광인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많이 봤어요. 미들블로커로서는 대한항공 김규민 선수와 현대캐피탈 신영석, 최민호 선수 영상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스텝을 밟는지 다 찾아봐요”라고 말했다.

이후 최종 목표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바야르사이한은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일단 프로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프로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되어 한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세계대회를 누비고 싶어요.”


글/ 강예진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