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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배구’ 좌절…도로공사-기업은행의 이유 있던 부진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20-04-01 00:46
6개 팀이 격돌하는 V-리그 여자부. 이들 가운데 ‘봄 배구(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은 단 3개 팀에만 주어진다. 리그에 속한 절반의 팀이 오르는 무대. 그러나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과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는 올 시즌 6라운드가 시작하기도 전에 봄 배구와 멀어졌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와 패자는 늘 존재하는 법이지만 최근 강팀으로 불리던 기업은행과 도로공사의 몰락은 다소 충격적인 결과다. 두 팀은 어쩌다 2019~2020시즌을 초라하게 마칠 수 밖에 없었을까.  


배구 명가는 옛말? 감독 교체 특효약도 소용 없었다

기업은행을 얘기할 때 항상 따라붙던 단어는 ‘봄 배구 단골손님’이었다. 2011년 창단한 기업은행은 탄탄한 전력과 이정철 감독의 지도력을 앞세워 2012~2013시즌부터 6시즌 연속 봄 배구 무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간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세 차례나 차지했다. 우승과 준우승을 번갈아 하면서 신인,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늘 낮은 순번에 그쳤지만 팀에 어울리는 선수를 선발, 육성하면서 최상의 기량을 유지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8~2019시즌 아쉽게 4위에 그치며 연속 봄 배구 진출이 6시즌에서 그친 기업은행. 다시 과거의 모습을 찾고자 여러 변화를 꾀했지만 모두 아쉬운 결과로 남았다.

기업은행은 가장 먼저 사령탑 교체를 단행했다. 창단 때부터 팀을 이끌던 이정철 감독과 이별하고 강릉여고를 CBS배 정상에 올려놨던 김우재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프로팀을 이끈 경험이 없는 감독이었지만 기업은행은 확실한 팀 컬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김우재 감독을 택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도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주전 세터 이나연과 재계약에 성공한 데 이어 고예림이 이탈한 자리에 표승주를 영입했다. 또 외국인 선수 어도라 어나이와도 재계약해 김희진, 표승주 등과 함께 좋은 시너지를 기대하게 했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리베로 포지션 역시 임의탈퇴 신분이던 한지현을 다시 팀에 적응하게 하면서 고민을 덜어내는 듯 보였다. 

선수 구성만 따지면 기업은행은 다른 구단에 전혀 밀릴 것 없었다. 국가대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김희진, 표승주, 김수지, 이나연 등과 함께 어나이, 백목화 등으로 구성된 기업은행은 다시 봄 배구에 오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기업은행은 봄 배구가 아니라 탈꼴찌 경쟁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기업은행의 추락은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김희진의 포지션이다. 김우재 감독은 취임 이후 김희진이 대표팀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속 팀에서도 아포짓 스파이커로 경기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으로 번갈아 나서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던 김희진에게는 분명 좋은 소식이었다. 팬들 역시 이 결정을 반겼다. 그리고 김희진은 리그 첫 경기부터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 했다. 김희진의 아포짓 스파이커 출전으로 미들블로커 한 자리에 아쉬움이 남았던 김우재 감독은 시즌 중 다시 김희진을 미들블로커로 기용하는 선택을 했다. 팀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팬들의 원성은 커졌다. 또 포지션 변경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이 따라주지 않자 김우재 감독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품는 팬들도 늘어나는 악재까지 겹쳤다. 

무엇보다 기업은행만의 팀 컬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따랐다. 기업은행은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팀보다는 부족한 수비를 공격으로 풀어내는 색이 강했다. 창단 이후 단 한 차례도 리그 수비 1위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 여섯 차례나 오른 것도 공격이 따라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공격 지표를 살펴보면 대부분 항목에서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올 시즌 기업은행은 공격과 수비 모두 잘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 데이터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론 기업은행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 김우재 감독 부임 이후 주축 선수인 김희진, 김수지, 표승주, 이나연 등이 대표팀 차출로 인해 팀을 비우는 시간이 길었기에 비시즌 기간 손발을 맞출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완전체로 시즌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김우재 감독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다양한 실험이 필요한 비시즌 기간에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한 탓에 패턴 플레이 등을 해볼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기업은행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선수들의 줄부상도 발목을 잡았다. 표승주와 김수지는 대표팀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팀에 돌아왔다. 기업은행은 선수 구성에 계속 차질이 생겼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은 곧 팀 성적으로 이어졌다. 충분한 휴식 후 경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도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니 무리해서 출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또 다른 부상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물론 악재만 겹쳤던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고예림의 보상 선수로 팀에 합류한 김주향은 공격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미래를 밝게 했다. 아직 수비에서의 안정감이 따라줘야 한다는 평가지만 공격에서만큼은 합격점을 받았다.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고심해야 하는 기업은행이다. 


계속된 외국인 선수 고민…세대교체도 실패

2017~2018시즌 통합 우승을 달성했던 한국도로공사는 이듬해 또다시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탄탄한 수비를 앞세운 그들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그러나 2019~2020시즌은 그들에게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도로공사 부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외국인 선수 문제다. 도로공사는 2019년 5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사전평가 2위를 받았던 셰리단 앳킨슨을 영입했다. 앳킨슨은 순천 한국배구연맹(KOVO)컵 대회 3경기에 출전해 72득점, 공격 성공률 38.2%를 기록했다. 힘과 타점은 좋다는 평가였고 테크닉만 보완한다면 V-리그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앳킨슨은 끝내 V-리그 개막을 경험하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컵 대회 이후 팀 훈련에서 무릎을 다쳤고 재활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최대 두 달 가까이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 도로공사는 교체를 단행했다. 



시즌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테일러 쿡(과거 테일러 심슨)이었다. 테일러는 2015~2016, 2017~2018시즌 흥국생명 소속으로 V-리그를 두 시즌이나 경험한 선수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부상과 심리적인 문제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두 시즌 성적은 28경기 701점 공격 성공률 37.4%다. 테일러는 드래프트 참가 선수 가운데 기량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과거 부상으로 시즌을 다 마치지 못했다는 전력 때문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우려의 시선이 적잖았지만 도로공사는 테일러가 팀의 구세주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최악의 선택으로 남고 말았다.

테일러는 1라운드를 무난하게 넘기며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2라운드부터 부상을 핑계로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도로공사 구단은 재활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테일러는 이미 경기에 나설 생각이 없었고 구단의 요구에 태업으로 일관했다. 결국 도로공사는 전반기 절반 이상을 외국인 선수 없이 치를 수밖에 없었고 테일러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결별을 통보했다. 

두 번이나 외국인 선수를 떠나보낸 도로공사는 다야미 산체스를 긴급 수혈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즌 중 팀에 합류한 상황이라 적응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산체스는 2월 16일 흥국생명과 경기에서 손목 부상을 당해 도로공사는 또다시 외국인 선수 없이 코트에 나서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사실 도로공사가 시즌을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외국인 선수가 아닌 2인 리시브 체제였다. 수비가 탁월한 문정원과 임명옥의 존재감은 도로공사가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비시즌 연습경기 때 수비가 극심하게 흔들리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다행히 정규시즌에서 안정감을 되찾으며 김종민 감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비에 대한 고민은 덜었지만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세대교체다. 

김종민 감독은 올 시즌을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기로 정했다. 미들블로커 정대영과 세터 이효희가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들에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종민 감독은 미들블로커 정선아와 세터 이원정이 베테랑 선수들의 자리를 채워주길 기대했다. 정선아는 2016년 신인 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도로공사의 유니폼을 입은 유망주. 이원정 역시 이듬해 전체 2순위로 큰 기대 속에 도로공사에 합류했다. 두 선수 모두 적응기간만 잘 보낸다면 프로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정선아와 이원정 모두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기량에 대한 문제보다는 대범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기 전체를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 일희일비하는 자세로 인해 경기 중에도 소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김종민 감독은 계속 경기에 투입하며 감각을 익히길 기대했지만 코트에서 보여주는 경기력은 썩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웠다. 

이미 봄 배구는 무산됐지만 도로공사는 시즌 남은 경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박정아, 정대영, 이효희, 문정원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FA로 풀린다. 모든 선수를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다음 시즌을 준비할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팀의 미래를 이끌어갈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글/ 송대성 CBS노컷뉴스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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